[기억할 오늘] 2.27
신생대 4기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ㆍ홍적세)라 분류되는 약 180만 년 전, 대륙에 살던 갈색 곰 한 쌍 혹은 한 무리가 북쪽으로 이주했다. 매머드처럼 커다란 것들에 치이며 사는 게 싫어서, 혹은 작고 약은 원인(原人)들이 성가셨을지도 모르겠다. 구석기 끝 무렵인 1만~10만년 전까지 지구는 빙기와 간빙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빙하 너머 꿈처럼 거대한 북쪽 세계는 얼음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간 것들이 북극곰이 됐다.
털빛이 눈빛을 닮아 간 그 180만년 사이 그들의 몸도 진화했다. 추위를 견디려 포근한 지방층과 불투수층을 만들었고, 두터운 가죽으로 코와 발바닥을 제외한 전신을 또 한 번 감쌌다. 몸무게 700kg에 3m에 달하는 육중한 몸의 시속 10km대의 수영 실력, 칼날 같은 발톱으로 그들은 금세 북극 최상위 포식자가 됐다. 풍부한 플랑크톤과 어족자원, 그걸 보고 몰려드는 바다사자 등 먹이감도 넉넉한 편이었다. 북극곰에게 해빙(海氷)은 사냥터이자 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삶의 공간. 여름철 해빙이 남쪽부터 녹으면 더 북쪽으로 옮기거나 아래쪽 육지로 이동하고, 가을이 와서 바다가 얼기 시작하면 다시 얼음을 따라 유랑하는 삶.
지질학적 시대에는 안정적이던 그 삶이 지난 100년 사이 지구온난화로 위협받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 더 절박한 수준에 이르렀음이 밝혀졌다. 그들은 주로 캐나다 북부 툰드라 지역에 서식하고 일부가 미국, 덴마크, 노르웨이, 러시아에 산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과 캐나다 환경부의 2015년 공동연구에 따르면, 주요 서식지인 보퍼트 해역 북극곰 개체수가 2004년 1,600마리에서 2010년 900마리로 격감했다. 과학자들은 야생의 북극곰이 불과 2만여 마리에 불과하리라 추정한다. 북극해 생태계 전체가 요동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국제 북극곰 보호 환경단체 PBI(Polar Bear International)가 매년 2월 27일을 ‘국제 북극곰의 날’로 정해 저런 사실을 알리는 까닭은 위기의 북극곰을 앞세워 북극해와 지구의 위기, 온난화의 위기를 환기하기 위해서다. PBI는 냉난방과 차량 운행 등 화석연료로 채우고 있는 우리의 과도한 욕망이 북극곰을 못 살게 굴고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부메랑이라 주장한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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