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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붙인 ‘두루미 천국’ 철원, 두루미에게도 천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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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붙인 ‘두루미 천국’ 철원, 두루미에게도 천국일까

입력
2017.02.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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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사람 이야기]

방송인 타일러 라시(가운데)와 세계자연기금(WWF)의 조류프로그램 담당 김경원(맨 오른쪽) 생태학 박사가 20일 강원 철원군 양지리에서 탐조 망원경인 필드스코프로 두루미들을 관찰하고 있다. 빨간색 점퍼를 입고 왔던 타일러는 두루미 관찰을 위해 무채색 옷으로 바꿔 입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방송인 타일러 라시(가운데)와 세계자연기금(WWF)의 조류프로그램 담당 김경원(맨 오른쪽) 생태학 박사가 20일 강원 철원군 양지리에서 탐조 망원경인 필드스코프로 두루미들을 관찰하고 있다. 빨간색 점퍼를 입고 왔던 타일러는 두루미 관찰을 위해 무채색 옷으로 바꿔 입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강원 철원 지역은 계절 따라 이동하는 두루미의 세계 최대 도래지다. 두루미와 재두루미는 러시아 아무르강과 중국 북부지역에서 번식한 뒤 겨울을 나기 위해 매년 11월 우리나라 철원으로 내려온다. 11월부터 3월 중순까지 철원은 겨울을 나는 두루미들의 천국이다. 재두루미 중 일부는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시로 날아간다.

올해는 특히 예년보다 2배 이상 많은 약 5,000마리의 두루미들이 철원을 찾았다. 최대 규모의 두루미가 철원에 머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세계자연기금(WWF)에서 두루미 보전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김경원 환경 생태학 박사, WWF의 홍보대사인 미국인 방송인 타일러 라시, 철원군 관계자들과 함께 철원 평야의 두루미 서식지들을 둘러봤다.

20일 강원 철원군 양지리의 한 논에서 두루미 가족이 먹이를 찾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20일 강원 철원군 양지리의 한 논에서 두루미 가족이 먹이를 찾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지난 20일 철원군 육군3사단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초소를 지나 넓은 논들이 펼쳐진 이길리로 향했다. 논 곳곳에 3, 4마리씩 무리를 이룬 두루미, 재두루미 가족들이 시베리아로 돌아가기 전 힘을 비축하기 위해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었다. 몸집이 좀 더 작고 몸 일부분에 검정색 털이 남아 있는 새끼 두루미는 부모를 쫓아 연신 뾰족한 부리를 논에 콕콕 박아댔다.

철원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루미와 재두루미를 함께 볼 수 있는 철새 도래지다. 세계적두루미 명소로 꼽히는 일본의 이즈미에는 재두루미와 흑두루미, 구시로에는 두루미만 산다. 김 박사는 “이즈미와 구시로의 두루미는 대부분 텃새”라며 “반면 철원은 계절 따라 이동하는 두루미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자연 월동지”라고 설명했다.

양지리 한탄강 옆 넓게 펼쳐진 논에서 가족 단위가 아닌 두루미 집단을 발견하고 멀찌감치 차를 세웠다. 두루미들은 시력이 좋은데다 차가 서면 경계를 하고 바로 날아가 버린다. 300m 떨어진 거리에 탐조 망원경인 필드스코프를 세워 놓고 두루미들을 관찰했다. 일행들 사이에는 “멋있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김 박사는 두루미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발걸음, 목소리 등 온갖 소음을 최대한 억제하고, 옷 색깔에도 신경을 썼다. 그는 “두루미는 시력이 사람보다 훨씬 좋다”며 “두루미를 관찰하려면 눈에 띄는 화려한 색상보다 검정색, 회색 등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했다.

빨간색 점퍼를 입고 왔던 타일러는 외투를 바꿔 입을 수밖에 없었다. 타일러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 철원에서 야생 두루미를 볼 수 있어서 놀랍다”며 “두루미의 서식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관찰할 수 있는 시설 등을 만들고 보호활동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일 강원 철원군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두루미들이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20일 강원 철원군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두루미들이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전 세계 두루미(crane·학)는 15종이며 이 가운데 7종이 철원을 찾는다. 특히 철원을 찾는 두루미의 대부분은 전 세계적으로 각각 멸종위기종과 멸종위기 취약종인 두루미(red-crowned crane·단정학)와 재두루미(white-naped crane)다. 우리나라도 두루미와 재두루미를 각각 멸종위기 1급과 2급 및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매년 철원을 찾는 두루미는 평균 800마리, 재두루미는 1,200~2,000마리 정도다. 올해는 이보다 많은 1,600마리의 두루미와 3,000마리 이상의 재두루미가 철원에 머문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 야생 두루미 수가 2,700여마리, 재두루미는 5,000마리밖에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이중 절반 이상이 철원을 찾은 셈이다.

여기에는 역설적으로 조류인플루엔자(AI)가 한몫했다. 채윤병 철원군 환경정책계장은 “올해 AI여파로 두루미들의 이동 영역을 제한하기 위해 예년보다 2배 많은 20여톤의 먹이를 공급했다”고 설명했다. 또 AI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면서 두루미에겐 먹이도 풍부하고, 사람들의 간섭도 적은 공간이 됐다. 김 박사는 “중국지역 등 다른 서식지의 파괴 영향과 철원의 서식 환경이 좋아지면서 이즈미로 내려가지 않은 두루미들도 많은 것 같다”고 했다.

20일 강원 철원군 양지리의 한 논에서 두루미들이 먹이를 찾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20일 강원 철원군 양지리의 한 논에서 두루미들이 먹이를 찾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철원군은 두루미 서식을 위해 물이 차 있는 ‘무논’을 유지하고, 먹이를 공급하는 등 철원의 농민과 두루미의 공생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2011년 민통선 일대 사유지가 천연기념물보호지역에서 해제되며 비닐하우스 건설도 늘었고 주요 서식지에 경원선이 통과하는 등 개발로 인한 두루미의 서식지는 급속히 줄고 있다. 전깃줄과 독극물에 의해 희생되기도 하고, 체계적인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탐조객들의 영향으로 몸살을 앓기도 한다.

그만큼 철원 두루미 서식지에 대한 보호는 절실하다. 김 박사는 “철원은 두루미에게 사라져서는 안될 중요한 서식지이자 중간 기착지”라며 “무분별한 개발을 피하고 체계적인 생태 관광과 유기농 농업을 통해 두루미 서식지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원=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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