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강원 철원군 철원평야 일대에는 천연기념물 202호인 두루미 떼들이 하늘을 뒤덮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10월 말부터 이듬해 3월까지 겨울을 나기 위해 연천과 철원의 비무장지대를 찾아와 생활하던 두루미는 곧 번식을 위해 러시아 연해주 한카 호수와 중국 동북부 지역으로 떠날 예정이다.
볍씨와 우렁이를 먹으며 체력을 보충하고 있는 이 두루미들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생활하다 번식처로 가기 위한 중간기착지로 철원을 찾았다. 일반적으로 두루미는 학(鶴)이라고도 부르는데 울음소리가 “두루루루”라고 들린다고 해서 두루미라는 순수한 우리말 이름을 얻었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학이 선비의 고고함을 상징한다고 하여 귀히 여겼다. 또한 학을 비유할 때 가장 많이 쓰는 사자성어 중 하나가 군계일학(群鷄一鶴)이다. 이는 '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 중 뛰어난 한 사람을 가리킨다.
새들 중 수명이 가장 길어 십장생의 하나로도 뽑힌 두루미는 먹이 활동 등 대부분의 생활을 가족 중심으로 한다. 철원평야에서 만난 두루미들은 대부분 3마리나 4마리가 한 가족을 이루며 추수가 끝난 농가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조금이라도 위험 신호가 오면 그 중 수놈 두루미가 바로 알아차린다. 어떤 상황에서도 방심하지 않고 주변을 살피며 자신의 가족을 돌보는 모습은 사뭇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두루미는 정수리에 붉은 반점이 있는 단정학(丹頂鶴)과 몸이 청회색인 재두루미다. 3월이 가까워지면서 두루미들이 서서히 우리나라를 떠나고 있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AI(조류인플루엔자) 파동 탓에 두루미들도 분명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 탓인지 두루미들은 경계심이 예전보다 더 높아져 작은 소리와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두루미를 보기 위해 철원을 찾았던 탐조 객들도 전망대가 폐쇄되면서 아쉽게도 발길을 되돌려야만 했다.
저녁노을이 지자 무리 중에 몇 마리가 철원평야 저 너머에 있는 북녘의 오성산을 향해 날아갔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는 두루미의 날갯짓 사이로, 가까이 있지만 갈 수 없는 분단의 현실이 겹쳐졌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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