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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에 나타난 뉴질랜드 토종새 ‘타카헤’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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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에 나타난 뉴질랜드 토종새 ‘타카헤’ 구하기

입력
2017.02.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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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진의 동물과 떠나는 세계여행] ⑦

지난 해 말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철새 ‘느시’가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상한대로 느시는 구름같이 몰려든 뜨거운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편히 쉬지도 못했을 것 같다. ‘다시는 오나 봐라’하고 떠났겠지. 느시 가족에게 대대손손 전해지던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희미해질 때쯤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

멸종 위기에 놓인 타카헤가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윌로뱅크 야생동물공원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멸종 위기에 놓인 타카헤가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윌로뱅크 야생동물공원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느시와 같은 두루미목 ‘타카헤’는 뉴질랜드에만 사는 날지 못하는 새다. 타카헤는 1898년 발견된 4마리를 마지막으로 뉴질랜드에서 자취를 감췄다. 결정적 계기는 19세기에 뉴질랜드로 이주한 유럽인들이었다. 함께 들어 온 고양이와 족제비가 타카헤를 잡아먹기 시작했고 염소와 사슴은 타카헤의 먹이를 먹어 치웠다. 사람들은 이 새를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무려 50년 만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느시처럼 제 발로 돌아왔다기보다는 숨어 있다 발견됐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멸종된 줄 알았던 새가 살아있었다니! 마치 우리나라에서 멸종한 호랑이나 표범이 다시 나타난 듯한 감격이 아니었을까?

타카헤를 만나러 더니든에 있는 오로코누이 에코생추어리(Orokonui Ecosanctuary)에 갔다. 이곳은 307ha 넓이에 8.7㎞나 되는 울타리를 치고 천적의 유입을 막는다. 타카헤, 키위, 투아타라, 오타고스킹크 등 뉴질랜드 토종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오로코누이 에코생추어리에는 뉴질랜드 토종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 동식물 유입을 막는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다.
오로코누이 에코생추어리에는 뉴질랜드 토종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 동식물 유입을 막는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다.

울타리는 상당히 세밀했다. 그물구멍의 크기는 6㎜로, 울타리 안으로 작은 쥐도 허용하지 않았다. 위쪽에는 기울기가 있는 후드를 만들어 포섬이나 고양이가 넘어갈 수 없고, 바닥 쪽에는 40㎝ 너비의 그물을 깔아 땅을 파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울타리를 따라 묻혀 있는 수로 내부에도 그물을 쳐 외부 생물 유입을 원천 차단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내부에도 확인 장치를 50m마다 설치했다. 장치 안쪽에는 땅콩버터를 넣어 두고 입구에는 잉크를 묻혀서, 들어가는 동물들의 발자국이 찍히도록 해 두 달마다 열어본다. 개와 함께 돌아다니며 천적의 냄새, 배설물 등 흔적을 찾기도 한다. 이런 노력으로 울타리 안에서 외래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곳에서는 천적이 없을 때 식물과 새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중이기도 하다.

오로코누이 에코생추어리에서는 타카헤의 배설물만 볼 수 있었다.
오로코누이 에코생추어리에서는 타카헤의 배설물만 볼 수 있었다.

타카헤는 이렇게 안전한 곳에서도 경계심이 강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똥은 볼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성체는 풀의 즙만 먹고 나머지는 배설한다. 마치 누가 씹다 뱉은 건초줄기 같아 보였는데 하루에 7m나 싼다고 한다.

그 후, 윌로뱅크 야생동물공원(Willowbank Wildlife Reserve)도 타카헤 야생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라이스트처치로 갔다. 이름처럼 야생이 느껴지지 않아 실망하던 찰나, 바로 눈앞에 타카헤 한 가족이 한가로이 물가를 거닐고 있었다. 그렇게 보기 힘들었던 타카헤를 이렇게 쉽게 보다니!

윌로뱅크 야생동물공원에서 타카헤를 닮은 푸케코 가족을 발견했다.
윌로뱅크 야생동물공원에서 타카헤를 닮은 푸케코 가족을 발견했다.

그런데 조금 더 가니 길가에 또 한 마리가 보였다. 그때서야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타카헤가 이렇게 흔하게 돌아다니나?’ 알고 보니 내가 본 새는 타카헤의 친척뻘 되는 푸케코(Australasian swamphen)였다. 타카헤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보다 가볍고 날 수도 있다. 이 새는 뉴질랜드뿐 아니라 호주, 파푸아뉴기니, 인도네시아 등에도 산다. 허가를 받으면 사냥도 가능하다.

푸케코는 타카헤와 비슷하지만 보다 가볍고 날 수도 있다.
푸케코는 타카헤와 비슷하지만 보다 가볍고 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2015년, 푸케코를 잡으러 다니던 사슴 사냥꾼들이 타카헤를 푸케코로 오인해 네 마리를 죽인 사건이 있었다. 가이드라인에 구분법도 있고 날개만 쏘는 규정이 있었음에도, 현재 260여 마리뿐인 타카헤의 멸종은 이 엄청난 실수로 인해 앞당겨졌다.

타카헤는 수명이 15년이며 1년에 한 번, 한두 마리의 새끼가 성체가 되고 필요한 영역도 넓어 개체수가 늘어나기 어렵다. 이 새가 이번에 사라지면 50년, 100년이 지나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윌로뱅크 깊숙한 곳에서, 보호된 공간 안에 있는 타카헤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보기가 무섭게 안쪽으로 숨어버려 아쉬웠지만 이해했다. 그 동안 각인된 인간이라는 존재는 피해야 할 천적 중 하나였을 테니까. 그리고 타카헤는 나에게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사라졌던 야생동물들이 돌아왔을 때를 위해, 그리고 앞으로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들을 위해 인간의 접근을 최소화한 자연 생태계를 보전해야 한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곳에 우리만 덩그러니 남기 전에.

글·사진=양효진 수의사.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동물원 동물큐레이터로 일하고, 오래 전부터 꿈꾸던 ‘전 세계 동물 만나기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시작했다. 동물원, 자연사박물관, 자연보호구역, 수족관, 농장 등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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