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06학번 오종석씨
공부방ㆍ학생회 선거ㆍ전시회…
스펙 벗어난 치열한 경험
“인도 등 11개국 여행하며
빈곤문제전문가 할일 찾았죠”
“그렇게 헤매지 않았다면 삶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을까요?”
입학한 지 꼭 11년 걸렸다. 24일 열린 졸업식에 천신만고(?) 끝에 참석한 2006년 서울대 경제학과 입학생 오종석(30)씨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취업난으로 졸업을 미루는 학생들을 ‘시조새’나 ‘암모나이트’ 등으로 부르는 등 ‘화석 선배’로 인식하는 요즘 대학가에서도 오씨 같은 2000년대 중반입학생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 어느새 서른 줄에 오른 나이를 밝히면서 조금은 쑥스러워하던 그는 이내 “너무 늦은 졸업에 약간 민망하긴 하지만 대학이라는 좋은 환경에서 뭐든지 해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후회는 않는다”고 말했다.
11년 동안 오씨는 취업용 ‘스펙(직장을 구할 때 요구되는 학점이나 영어 점수 등) 쌓기’와는 담을 쌓았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만 가면 행복해진다’는 말에 속은 느낌이 들었다”며 “내가 잘하는 게 뭔지 찾아보려고 대학생활을 새로운 도전으로 채우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입학 당시를 떠올렸다. ‘도전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저소득층 아이들 소원을 들어주는 이색 프로젝트를 기획하거나 독도전시회를 개최했고, 각종 공부방 활동과 연극에 참여했다. 총학생회 선거에 부총학생회장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도전과 실패의 반복이었다. 그는 “대학은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곳이라 괜찮았다. 실패를 두려워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고 말했다.
2010년 7월은 그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무작정 인도로 떠나 2년 가까운 661일 동안 네팔,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 11개국 2만160km를 걸었다. “삶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여행 초반의 기대였고, 제3세계 빈곤의 실상을 생생하게 체험한 게 여행의 소득이었다.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에서 2주간 일하며 소액대출 프로그램의 실상을 지켜봤고, 태국 메솟의 미얀마인 난민캠프나 인도의 오지 나갈랜드에서 꿈을 잃어버린 아이들을 만났다. 인도와 싱가포르 간 임금 격차가 20~30배인데 물가 차이는 2~3배 밖에 나지 않는 것에서 구조적 모순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빈곤문제는 단순한 원조가 아닌 그 나라의 산업을 부흥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게 됐다“고 말한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오씨는 2015년 5월 ‘스물넷, 인도에서 한국까지 걷다’라는 책도 출간할 수 있었다. 대통령상인 대한민국 인재상도 탔다.
오씨는 대학원에서 빈곤문제 전문가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앞으로 대학원에서 계량경제학을 전공해 빈곤 퇴치사업의 경제적 효과를 탐구할 계획이다. 그는 “빨리 공부를 마치고 아프리카 빈곤 교육복지 프로그램 등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현지에서 빈곤문제에 직접 부딪혀보고 싶다는 바람도 적극 내비친 그는 벌써부터 ‘빈민 현장’에 대한 설렘에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