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적 60년 만에 서울대 명예졸업
5분 예정된 답사 30분간 이어가
“관악캠퍼스에는 처음 왔다…
피나 청년 동기생 받아 달라”
졸업생들 박수갈채 쏟아져
소설 ‘광장’의 작가 최인훈(81)씨가 제적 60년 만에 서울대 법대 졸업장을 받았다.
서울대는 24일 오후 4시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린 71회 법대 졸업식에서 최인훈씨에게 명예졸업증서와 ‘정의의 종’을 수여했다. 당초 건강 문제로 졸업식 참여가 불투명했던 최씨는 5분으로 예정된 답사를 30여분 가까이 이어가며 모교를 찾은 뜨거운 소회를 밝혔다.
최씨는 참으로 감개무량한 듯 답사를 하는 중간 중간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1950년대 중반 모교를 떠난 이후 서울대 교문은 TV를 통해 접했을 뿐”이라며 “관악캠퍼스에는 처음 왔다”고 말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현실과 갑자기 만났다”라든가 “틀림없는 모교인데 이런 형식으로 이렇게 다시 보게 되리라고는…”이라는 말로 입학 65년 만에 갖는 졸업식의 감격을 표현했다. 그가 “졸업 동기생이 된 이 피난 청년을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했을 땐 참석한 졸업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최씨는 “오늘은 적어도 여러분처럼 행복한 인간 존재가 절대로 없을 걸로 생각한다”며 “온갖 흥미로운 일을 공부를 위해 극복한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후배들의 졸업을 축하했다. 졸업식 직전 법대를 방문해서는 방명록에 “인사 올림이 너무 늦었습니다. 오기 전의 마음과 캠퍼스에 들어선 느낌이 또 다릅니다. 옛날의 재학생 오늘의 명예졸업생 최인훈”이라는 글을 남겼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최씨는 6.25전쟁 발발 직후 월남해 1952년 법대에 입학했으나 졸업을 앞둔 1956년 장교로 군 입대를 하면서 휴학한 뒤 복학하지 않아 이듬해 제적됐다. 대학 중퇴 후 최씨는 본격적으로 소설 집필에 들어가, ‘광장’ ‘회색인’ 등 한국 현대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광장’은 전쟁 이후 양극화된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던 한국인들에게 ‘제3의 길’이라는 문제를 제기, 학계는 물론 대중의 호평을 받았다. 조홍식 법대학장은 “현대사의 굵직한 국면마다 예술을 통해 발언하신 해방 이후 최고의 작가”라며 “한국 문학 발전에 대한 빛나는 공적과 대학을 드높인 공덕에 명예졸업증서를 이번에 추천하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이날 세계적인 생명과학자 신승일(79) 박사에게도 명예졸업증서를 수여했다. 신 박사는 1957년 화학과에 입학했다가 휴학 후 복학을 하지 않아 1962년 제적됐다. 박사 학위는 미국 브랜다이스대에서 받았으며, 생화학과 세포유전학 등 생명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꼽힌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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