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개봉한 영화 ‘국가대표2’는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2003년 일본 아오모리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 대회를 앞두고 급조된 팀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기를 그린 내용이었다.
지금도 여건은 열악하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의 저변은 ‘아예 없다’는 표현을 써도 무방하다. 1998년 5월 처음 결성된 이후 아직도 정규 팀(실업ㆍ대학ㆍ초중고)은 단 한 팀도 없다. 실제 영화처럼 사연 많은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연세대 기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피아니스트 한수진(30), 명문 컬럼비아대 의대 대학원에 휴학계를 낸 박은정(28ㆍ캐롤라인 박), 쇼트트랙에서 전향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아이스하키 대표로 뛰고 있는 고혜인(23) 등 각양각색의 사연을 갖고 있다.
열악한 환경과 불투명한 미래에도 단지 아이스하키가 좋아 태극마크를 단 그들에게 이제 더 이상 불가능은 없어 보인다. 여자 대표팀이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극적인 역전 드라마로 7전8기 끝에 만리장성 중국을 넘는 쾌거를 이뤘다.
대표팀(세계랭킹 23위)은 23일 일본 삿포로의 쓰키사무 체육관에서 열린 대회 4차전에서 중국과 슛아웃(승부치기) 접전 끝에 3-2(1-1 1-1 0-0 0-0 <슛아웃> 1-0) 역전승을 거뒀다. 대표팀이 공식 대회에서 중국을 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9년 강원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을 처음 만나 1-15로 참패한 이래 7차례 대결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득점은 단 2점인 반면 실점은 90점에 달했던 중국에 사상 첫 승을 거두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눈부신 성장세를 이어갔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역사에 남을 만한 짜릿한 승부였다. 3피리어드 60분간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팀은 연장 피리어드에서도 상대 골문을 열지 못했다. 대회 규정에 따라 축구 승부차기와 비슷한 슛아웃에 들어가서도 9번 슈터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는 살얼음판 승부 끝에 대표팀의 10번 슈터 박종아가 페널티샷을 성공시키고, 골리 신소정이 중국 10번 슈터를 막아내며 70여분간 펼쳐진 혈투가 막을 내렸다.
하지만 기대했던 아시안게임 첫 메달 획득은 사실상 불발됐다. 이번 대회는 6개국이 한 번씩 맞붙어 순위를 가린다. 3피리어드 이내 승리할 경우 승점 3점을 받는다. 연장전까지 가서 이기면 승점 2점, 패해도 승점 1점이 주어진다. 3피리어드 이내 패하면 승점이 없다.
1차전 태국전(20-0승) 대승 이후 일본(0-3패), 카자흐스탄(0-1패)에 연이어 졌던 한국은 이날 연장 승부 끝에 중국의 벽을 넘어서며 2승2패 승점 5점을 기록했다. 한국은 1위 중국(3승1패ㆍ승점 10점), 한 경기를 덜 치른 2위 일본(3승ㆍ승점 9점)에 승점에서 크게 뒤진 데다 카자흐스탄(1승2패ㆍ승점 3점)에도 승점 싸움에서 밀릴 것이 확실한 상황이다. 카자흐스탄이 약체 홍콩, 태국과 두 경기를 남겨 놓고 있는데 두 팀이 이변을 일으킬 확률은 희박하다.
메달 획득과 상관없이 대표팀은 7위 일본과 대등하게 맞서는 등 희망을 봤다. 결승 골을 터트린 박종아는 “비록 메달은 무산됐지만 중국을 상대로 공식 대회에서 처음으로 이겼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 고 소감을 밝혔다. 신소정은 “선수들 모두 메달은 생각하지 말고 중국에 이겨서 우리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경기 전에 결의를 다졌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25일 홍콩과 최종전을 치른다.
삿포로=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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