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단체에 따라 운영 안 할 수도
인터넷 예매 불가ㆍ악보 준비해야
음반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가 아닌 생생한 현장 음악을, 악보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면 어떨까? 지난달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 국내 공연장으로는 처음으로 악보를 보면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스코어-데스크석’(스코어석)이 설치됐다. 지난 18일 시범운영 한 달을 맞은 스코어석을 찾아 KBS교향악단이 연주한 공연을 직접 관람했다.
스코어석은 콘서트홀 3층 박스석에 마련됐다. 다른 관람객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스코어석은 6개의 본 좌석 뒤에 설치됐다. 악보를 펴놓을 수 있는 넓은 보면대와 의자, 밝기를 조명할 수 있는 작은 조명이 설치돼 있다. 예술의전당의 스코어석은 총 4개다.
머릿속으로만 그려가던 악보를 눈 앞에 펼쳐놓고 음악을 듣는다는 설렘, 나 홀로 고급 음악감상실에 앉아 있다는 착각이 스코어석의 첫인상이다. 그러나 이런 기분도 잠시, 박스석에 앉은 다른 관객 4명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뜻하지 않은 긴장감을 느낀다. 좌석 입장 전에 “다른 관객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악보 넘기는 소리를 주의해 달라”는 안내를 받은 데다 좌석에도 같은 내용의 안내문이 부착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악보와 함께 하는 공연 관람은 그 동안 봐온 클래식 공연과는 확연히 다른 경험이다. 악보에 적힌 음표와 스타카토 같은 표현기호, 셈여림표를 따라가며 연주의 특징을 보다 세심히 감상할 수 있다. 흔히 ‘밤의 여왕 아리아’라고 불리는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경우 악보 속 가사를 보며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듣는 묘미가 새로웠다.
하지만 스코어석에서 맞이한 공연은 관람으로 표현할 순 없다. 어디까지나 악보를 보며 공연을 ‘보는’ 게 아닌 음악을 ‘듣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미리 안내를 받긴 했지만 스코어석은 무대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는 자리다. 무대 뒤편에 위치한 타악기 주자의 상반신과 더블베이스의 윗부분만 정도가 간신히 보인다. 만약 유명 지휘자의 지휘나 연주자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실망할 수 있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의 스코어석 역시 무대를 볼 수 없는 곳에 마련돼 있다.
예술의전당은 지금까지 스코어석을 운영한 공연이 8개밖에 되지 않아 시범 운영기간을 연장할 방침이다. 공연을 기획하는 오케스트라 쪽에서는 감상의 폭을 확대한다는 취지에 공감은 하면서도 이를 활성화할 여유가 없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지난달 24일 정기연주회에서 스코어석을 운영할 예정이었던 KBS교향악단은 연주자들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 탓에 계획을 접었다. KBS교향악단 관계자는 “곡의 분위기가 무거운 데다 연주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말러의 곡을 연주해야 해 최종적으로 스코어석을 운영하지 않았다”며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나, 빛 공해 사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위험부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스코어석 운영을 검토하는 데는 긍정적”이라면서도 “별도의 유료좌석을 판매하려면 티켓 종류가 추가되는 데다 시스템도 정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연기획 단체마다 입장이 다르니 스코어석을 이용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예술의전당에 문의하는 수밖에 없다. 전산망이 마련돼 있지 않아 인터넷 예매는 불가능하고, 예술의전당 방문예약과 전화예약만 가능하다. 악보는 관람자가 직접 준비해 와야 한다. 가격은 공연기획 단체에서 정한다. 예술의전당 기획공연인 ‘토요콘서트’는 일반 3층 좌석과 같은 가격(2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