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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비판적 지지와 집토끼라는 환상

입력
2017.02.2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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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탄핵심판에 대한 선고가 곧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해를 넘겨서도 열기가 사그라들지 않고 이어져온 끈질긴 촛불 시위가 이뤄낸 역사적 성과임에 틀림 없다. 오랫동안 여러 사람이 바라던 일이 거의 이뤄져 가는 마당이니 감격으로 가득해야 마땅할 것이나, 기대 한편에, 어쩌면 그 기대 못지않은 크기로 불안감을 토로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단순히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것을 넘어 그동안 구석구석 망가져 온 사회를 바로잡으려면 결코 쉽지 않을 지루한 싸움이 될 것임을 예감해서일 것이다.

최근 들어 시민들의 피로감과 분노 수위를 높이는 것은 단지 대통령과 그 주변 세력들만은 아니다. 일전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사퇴를 다행스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이후에도 나아진 것은 별로 없다. 새로이 떠오르는 대선주자들 역시 구설에 올랐다 곤욕을 치렀다 해명하기를 반복한다. 물론 정치에서 모든 사람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세력의 큰 반대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여러 후보가 자신의 지지층으로 분류될 만한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안기는 상황이 거듭되고 있다는 데 있다.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두고 논란의 소지가 있는 대연정 논의에 보태서 박 대통령의 ‘선의’까지 주장하다가 지지율 정체를 겪고 있는 안희정 지사도 그중 한 사람이고,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직후에 성소수자 인권을 ‘나중에’ 두겠다고 했다, 안 했다 논란에 싸인 문재인 전 대표도 해당한다.

문 전 대표의 경우, 명시적으로 성소수자의 인권이 나중이라 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그 직전에 보수 기독교계와의 만남에서 이미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면서, 차별은 곤란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있으니 차별금지법 제정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이미 여성계에서 낙태죄는 그 존재 자체로 여성 혐오적인 법률이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거듭 밝혔음에도 낙태죄 폐지 입장조차 취할 생각이 없고, 또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페미니즘의 핵심적 내용에조차 동의하지 않으면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 선언하며 진보적 여성운동의 지지를 바라는 형국인 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참여정부 때부터 추진되어 온 것으로서 이를 포기했을 뿐 아니라, 이 법이 동성애 차별금지법이라 우기는 보수세력에 동조하여 사회적 합의가 없어 추진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이해관계의 충돌을 뚫고 개혁을 추진할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선언한 것에 다름없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소위 ‘집토끼’는 이미 잡았다 치고 산에 있는 남의 토끼를 잡아야 선거에서 이긴다면서, 개혁 대상이거나 사회적 적폐의 장본인들, 최대한 양보해서 설득 대상이 되어야 할 상대의 눈치만 보는 행태가 선거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올해는 필자가 투표권도 없이 열심히 호헌철폐부터 공정선거감시운동까지 뛰어 다녔던 87년으로부터 꼭 30년이 되는 해이다. 여건상 원하는 정책은 얻을 수 없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기도 어려우며, 우선은 비판적 지지를 하라는 이야기 역시 30년을 꼬박 들은 셈이다. 그런데 과연 올해도 그래야 하는 것일까.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열어준 정치 공간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정권 교체의 가능성은 높아졌고, 단지 인물의 교체가 아니라 진정한 사회 변화를 향한 갈망도 뜨겁다. 만약 이번에도 새로운 변화를 위한 청사진과 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 대결이 이루어지지 않고 막연히 중도를 잡고 사회적 합의를 지향하는 공허한 구호가 난무하는 선거가 된다면, 언제나 다시 제대로 된 정치의 장을 볼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결국 너는 나를 찍게 되어 있다는 태도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갈등과 제대로 된 합의를 기대한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ㆍ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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