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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칼럼] 세대간 갈등, 어떻게 풀까

입력
2017.02.2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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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인 사고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은 정치적 입장을 펼 때도 논리나 법리를 따지기보다는 “대통령이 불쌍하다” “다른 나라 보기 창피하다” “여자의 부끄러운 부분까지 들춘다”와 같은 감성적인 구호에 더 이끌린다. 시민정신의 핵심인 준법보다는 봉건적인 온정주의, 가문이나 집안 먼저, 식민지시대나 독재시대 식의 편법 등 과거의 방식이 더 익숙한 탓이다.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분명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데 감정에 치우쳐 우기거나 합리적인 의사과정보다는 일단 주관적인 판단부터 내리는 노인들이 그저 답답할 것이다. 사회에 나오기 전부터 이미 학자금 대출이나 월세 등으로 빚쟁이가 된 청년들 입장에서는 특히 따박따박 집세와 연금 받아 가며 놀면서 자기 건강만 챙기며 자기만의 논리만 옳다고 주장하는 팔팔한 노인들이 더 미울 수 있다. “꼰대”니 “틀딱”이니 하는 비속어까지 쓰는 노인들에 대한 젊은이들의 분노에 숨어 있는 심리다.

반면에, 노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젊은이들의 태도도 기가 막히다. 말대답은커녕, 어른들은 똑바로 쳐다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과거와 너무 다르게, 어른들 말을 탁탁 끊고 종 주먹을 들이대는 젊은이들의 버릇없음은 모욕적이기까지 하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상전 모시듯 하면서, 노인들 보면 냄새 나는 오물인 듯 슬슬 피하고 외면하는 자식이나 손주들에게 받은 상처도 있다. 소외감을 느끼는 공간은 집뿐이 아니다. 은행, 관공서, 버스나 기차 이용을 할 때,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 앱을 쓰지 않는 노인들은 항상 불이익을 당해야 한다.

노안으로 작은 활자를 들여다보는 것도 어지러운데, 왜 그렇게 기억해야 할 암호와 숫자들이 많은가. 한국말 놔두고 영어만 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린 시절 영어 배울 기회 자체가 별로 없었거니와, 한국말도 가물가물한데 어떻게 영어까지 외우겠는가. 자식들 아파트 이름까지 영어로 쓰는 세상은 아예 노인들을 따돌리려 작정을 한 것 같다. 이렇게 소소한 일들도 만만치 않으니, 돈이 설령 있다 해도 고달프다. 더구나 독립적인 노년은 상상하지 못하고 모든 재산을 다 자식에게 쏟아 부었던 가난한 노인들은 오죽하겠는가. 생활비는커녕 곁도 내주지 않는 자식들에 대한 배신감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다.

겉으로는 노인세대와 젊은 세대의 대립이 정치적 이슈 때문이지만, 속을 들추면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에서 온 원망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노인들의 얼굴에 모처럼 활기가 돌고 엔돌핀이라도 솟는지 힘차기까지 한 몸짓을 보면서 안쓰럽고 슬픈 마음이 든다. 그 동안 얼마나 집과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꼈으면 외로운 독거노인(?)인 박근혜 대통령의 처지와 자신들을 동일시해서, 죄목 많은 대통령을 그렇게 열심히 보호하려 할까 싶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무시당하고 따돌림 받는 노인들의 상처가 어쩌면 그들을 거리에 내몰고, 애국가를 크게 부르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약자를 조롱하며 강함을 과시하는 일베 역시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세상살이에 불만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더 약한 소수를 괴롭혀서라도 스스로가 약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려 한다.

소외된 사람들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사회를 퇴행시켜 파괴적인 방향으로 몰아가는 세력은 항상 있었다. 문맹이거나 혹은 비판적인 사고를 키워주는 책 한 권 읽어 보지 않는 노인들이나 스마트 폰 게임이나 카톡은 할지언정 신문 한 부 사 읽지 않는 젊은이들은 언제라도 그런 세력들의 선동에 좌우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양 쪽의 상처받은 마음을 잘 다독이고 파국을 막을 진짜 어른들이 꼭 필요한데 아쉽게도 존경할 만한 원로들은 번잡한 세속에 몸을 담그고 싶지 않아 말씀 없이 숨어 사시는 것 같다(무자비한 악플 세례같은 것을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대신 어른답지 못한 가짜나 자기 잇속만 잘 계산하는 정치인들만 앞에 나와 엉뚱한 말과 유치한 기행만 되풀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난세일수록 혹세무민하는 가짜가 득세하기 마련이라 그들을 잘 판별해 솎아 내는 훈련이 절실하다. 독재의 잔재를 걷어 내지 못한 과거의 주입식 교육에는 그런 기회가 거의 없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학교든 직장이든 약자의 말을 잘 경청하려는 강자는 참 찾아보기 힘들다.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이 법이라고 말하면서도 전혀 부끄럽지 않는 분위기라면, 일진이든 교사든 선배든 일단 힘 있으면 모든 토론을 다 생략하고 상식이나 법 위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지 않은 청년들과 노인들이 다른 세대에 희생당하고 무시당했다 생각하지만, 진짜 적은 정작 다른 곳에서 아주 안온하게 잘 지내고들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기회에 각 지자체들이 노인들과 젊은이들, 혹은 보수나 진보가 한 자리에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포럼 형태의 자리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 하는 비현실적인 상상을 해 보게 된다. 인터넷의 악플이나 광장의 과격한 구호들, 정치권이나 공무원 사회의 소통 부재도 실은 건전한 토론법을 제대로 훈련 받지 못한 데 기인할 수 있다. 세대 간의 단절뿐 아니라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변증법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능력이 없다면 사회는 점점 더 양분화되고 과격하게 변할까 두렵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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