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측 헌법 질서 무시
헌재 권위 사실상 땅에 떨어져
朴 최종변론 출석 여부 안 밝혀
특검 대면조사 사실상 물건너가
박근혜 대통령 법률 대리인단이 사실상 ‘탄핵심판 판 엎기’에 총력전을 펼치는 양상이다. 막바지에 이른 탄핵심리 시점에서 헌법재판관에 대한 무분별한 모독과 강일원 주심 재판관 기피신청 등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정을 어지럽힌 의도가 너무 뚜렷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을 통해 ‘기각 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대통령 측이 ‘태극기 집회’ 등 지지층을 등에 업고 ‘불공정 프레임’으로 헌재 결정 불복 수순을 밟는 계산된 행동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측 대리인단에 뒤늦게 합류한 김평우(72) 변호사는 22일 탄핵심판 제16차 변론기일에서 박한철 전 헌재소장 등 20여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 가운데는 헌법학자인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과 허영 경희대 로스쿨 석좌교수를 비롯해 정세균 국회의장, 정진석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김무성ㆍ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등 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정치인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은 “(그 동안) 신청된 증인 38명 중 대통령 측 신청 증인이 26명”이라면서 “재판 진행 과정에서 대통령 측 이중환 변호사가 추가로 신청할 증인이 없다고 답변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사 출신 김 변호사가 최종 변론기일 결정만 남은 상황에서 무더기로 증인들을 신청한 것은 그 동안 이뤄진 변론과정과 재판을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재판부가 두 달여 동안 신문한 증인이 24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김 변호사가 추가 신청한 증인들을 모두 신문하려면 최소 두 달 이상이 필요하다.
대통령측의 ‘판 엎기’ 시도는 준비서면에도 드러난 것으로 파악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통령 법률 대리인단은 21일 헌재에 제출한 준비서면에 “3월13일 이전에 졸속으로 파면 결정을 내리면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불복의사는 재판관들을 자극해 탄핵심판에 유리할 게 없지만, 헌재 결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측면이 큰 것으로 보인다. 김평우(72) 변호사가 이날 같은 주장을 폈다. 김 변호사는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역사적ㆍ국제적 심판 사건에 대해 이정미 재판관의 퇴임일자인 3월13일에 선고하도록 맞춰서 증거조사를 하고 변론절차를 과속ㆍ졸속 진행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최종변론 기일 출석 여부에 대해서도 대리인측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미뤘다. 헌재가 지난 20일 변론기일 당시 24일을 최종변론 기일로 정하면서 22일 전까지 대통령 출석여부에 대한 답을 하도록 주문했지만 박 대통령과 대리인들이 대놓고 무시한 것이다. 헌재는 이번에도 대통령측 대리인의 준비부족 요청에 응해 최종변론 기일을 27일로 연기하면서 하루 전인 26일까지는 출석 여부를 알려달라고 대통령 측에 다시 한번 주문했다. 이 권한대행은 지연전략을 열거하며 “많이 참았다”고 했지만 심판정을 난장판으로 만든 대통령측의 헌법질서 무시와 막무가내식 시간지연에 헌재 권위까지 땅에 떨어지는 ‘치욕의 날’이 됐다.
헌재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출석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점에 비춰, 특검의 대면조사 역시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대통령측 대리인 행태로 봐서 박 대통령의 헌재 불출석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특검의 대면조사 요구까지 무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박 대통령이 불공정을 내세워 여론정치 즉, ‘태극기 집회’에만 기댈 공산이 크다.
국회 소추위원단 이춘석 의원은 변론 직후 “대통령 측의 거대한 시나리오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본다”며 “클라이막스는 선고 하루나 이틀 전 헌재 탄핵 인용 결정을 피하기 위해 박 대통령이 하야하는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