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심판 결정 전 자진 사퇴하는 시나리오가 퍼지고 있다. 범보수 진영이 박 대통령 사임설을 띄우며 군불을 때고 있는 데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서 막장극을 연출하며 재판 절차 자체를 보이콧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자진 사퇴설에 대해 “사실무근의 근거 없는 얘기”라며 부인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자진 사퇴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22일 “언론 보도를 보면 대통령이 현재 하야나 자진사퇴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나오고 있다”면서도 “청와대에서도 (하야를) 검토한 것으로 들었다”고 주장했다. 정 원내대표는 그러면서 “대통령의 자진 하야와 여야의 정치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현재 토요일마다 시민들이 (탄핵 찬반) 양쪽으로 나와서 가열되는 모습을 보면 헌재에서 어떤 결정이 나도 후폭풍이 크다는 우려가 많다”고도 했다. 정 원내대표는 청와대와의 교감 여부에 대해 “여기서 이야기 하기가 조금 그렇다”며 말끝을 흐렸다.
앞서 바른정당에서도 주호영 원내대표가 21일 “대통령이 사임하고, 정치권은 사법 처리 부담을 덜어주는 걸로 해결해야만 국론이 분열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도 “대통령의 사임이 국론 통합에 기여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기존 의사를 재확인했다.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이든 국론 분열이 극심해지는 만큼 박 대통령이 자진 사퇴하고 정치권은 대통령 처벌을 면해주는 방식으로 타협하자는 주장이다.
야권이 박 대통령 사법 처리 면제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실현 불가능한 주장이지만, 박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사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대통령 측이 탄핵 심판 절차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불복을 시사하고 있지만, 실제 탄핵이 인용될 경우 법적 심판의 무게를 벗어나기 어렵다. 탄핵 결정으로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받지 못하는 등 법적인 불명예를 안기 보다, 차라리 자진 사퇴를 통해서 탄핵 절차를 중단시키고 동정 여론을 모으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탄핵 절차의 부당성을 호소하면서도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 스스로 물러난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며 “이 경우 탄핵 심판 절차를 중단시켜, 추후에 끊임없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여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헌재 탄핵심판에서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재판관을 향해 막말에 가까운 언사를 쏟아내며 막장극을 연출한 것도 탄핵 심판 선고를 받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린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국회소추위원인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대리인단의 시나리오의 클라이맥스는 헌재의 탄핵 선고 하루나 이틀 전에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을 피하기 위해 하야 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주장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