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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목이 길어 슬픈 동물은 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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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목이 길어 슬픈 동물은 기린

입력
2017.02.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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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우치동물원에서 최종욱 수의사가 기린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광주 우치동물원에서 최종욱 수의사가 기린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육상에서 가장 키 큰 동물은? 짐작하다시피 기린(麒麟)이다. 기린은 어느 동물보다도 그야말로 월등히 크다. 아마도 공룡시대 이래로 가장 키 큰 동물의 지위를 계속 유지해 왔을 것이다. 기린은 새끼일 때도 다른 동물의 새끼보다 키가 훨씬 크다. 그래서 기린이 분만 할 때 보면 마치 그 긴 목이 떡 기계에서 가래 떡 뽑아 나오듯 스르륵 하고 시간차를 두고 서서히 빠져 나온다. 그러나 다른 대부분의 큰 소과 초식 동물들은 새끼 머리와 목이 툭 소리와 함께 금방 빠져 나오는 게 분만의 하이라이트다.

노천명 시인의 ‘사슴’이란 시에서 사슴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라고 했다. 만일 노 시인이 동물원에 가서 기린을 보았다면 아마도 가장 높은 족속은 기린이 되었지 않았을까 싶다. 사슴의 뿔은 날카로운 무기인데다 수컷만 가지고 있고, 가을 한철이 지나면 저절로 떨어져 버린다. 반면 기린의 뿔은 영구한데다 머리 장식 이외에 다른 목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마치 신께서 그들 암수 모두에게 일부러 왕관을 씌워준 것처럼 단순하면서도 우아하며 부드러운 가죽으로 둘러싸여 있다.

기린의 머리에 왕관처럼 달린 뿔은 장식 이외에 다른 목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린의 머리에 왕관처럼 달린 뿔은 장식 이외에 다른 목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린은 사실 신체 구조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마음대로 내서는 안 되는 동물이기도 하다. 사람들도 고혈압이 생기면 평생 화를 죽이고 살아야 하듯 기린은 예외 없이 선천적으로 고혈압 환자라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다. 타 동물에 비해 거의 두 배나 높은 혈압(평균 160~260mmHg)을 가지고 있다. 이토록 혈압이 높게 유지되려면 가장 강해야 할 것은 물론 심장이다. 그래서 심장의 근육도 두껍고 심장 크기 또한 몸의 비율에 비해 매우 큰 편이다. 그러나 평생 심장에 무리한 부하가 계속 걸리기 때문에 몸 크기에 비해 빨리 죽는다. 기린의 평균 수명은 15~20년뿐이며 대부분 심장병으로 죽는다.

이 밖에도 기린의 혈관계에는 다른 동물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원더네트’라는 혈관이 있는데, 이는 완충형 특수혈압조절장치에 해당한다. 만일 이 혈관이 없다면 기린은 고개 숙여 물을 마실 때 일시적으로 피가 머리로 몰려 혈관이 터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특수조직의 가동은 필연적인 몸의 무리로 이어지기 때문에 기린은 스스로 다리를 벌려 몸을 최대한 낮추어 귀한 특수 장치에 걸리는 부하를 경감시키려고 노력 한다.

새끼 기린이 어미 기린의 품 안에 안겨있다.
새끼 기린이 어미 기린의 품 안에 안겨있다.

기린의 흥미로운 점 또 한 가지는 목소리가 없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큰 귀로 듣기는 잘한다. 심지어 새끼는 태어나는 순간조차 울지 않는다.

기린하면 40㎝가 넘는 두툼한 혀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혀는 앞부분은 검고 뒷부분은 빨갛다. 검은 부분은 단단한 조직으로 되어 있어 가시가 달린 가지도 문제없이 감아 먹을 수 있다.

기린은 그 큰 키 때문에 초원의 초식동물들에게 거의 맏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기린 주변에 여러 초식동물들이 모여 사는데 그들은 기린이 뛰면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달린다. 그건 틀림없이 위험한 동물이나 인간이 반경 2㎞안에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기린도 위기에 몰리면 긴 다리를 이용해 앞발 공격을 하는데, 그 발차기에 제대로 걸리면 아무리 사자라도 치명상을 입는다. 기린은 네발 달린 동물들 중에 유일하게 수영을 못한다고 한다. 아마도 긴 목이 장애요인이 아닌가 싶다.

걷는 모양 역시 특이하다. 한쪽 다리가 일시에 이동하고 나서 반대쪽 다리가 이동한다. 보통 동물들은 앞발이 나가면 반대쪽 뒷발이 동시에 나가는 지그재그 방식이다.

이런 다양한 특징만 보더라도 기린은 범상한 동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초원의 마지막 수호자로 불리는 기린은 인간에 의한 자연 파괴의 지표가 된다. 기린이 살 수 없는 사바나(열대 대초원)는 더 이상 사바나가 아니다.

글·사진=최종욱 수의사(광주 우치동물원 진료팀장,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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