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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속 살인자, 라돈… 초과 검출돼도 집값 떨어진다며 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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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속 살인자, 라돈… 초과 검출돼도 집값 떨어진다며 쉬쉬”

입력
2017.02.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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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양 등에 있는 암 유발 방사성물질

주택 10곳 중 1곳 기준치 넘어

사유재산인 주택에 제재 힘들어

“재앙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환기ㆍ균열 보강 등 모두가 노력을”

조승연 연세대 자연방사능 환경보건센터장은 “다른 대기오염 물질과 달리 라돈만 유독 위해성에 비해 국민적 관심이 낮다”며 “폐암 등 예방을 위해 시민들의 저감 노력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자연방사능 환경보건센터 제공
조승연 연세대 자연방사능 환경보건센터장은 “다른 대기오염 물질과 달리 라돈만 유독 위해성에 비해 국민적 관심이 낮다”며 “폐암 등 예방을 위해 시민들의 저감 노력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자연방사능 환경보건센터 제공

몇 년 전 한 지방의 주택가에 라돈 농도 측정을 하러 간 조승연(58) 연세대 자연방사능 환경보건센터장은 놀란 마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집집마다 국내 권고기준치인 공기 1 ㎥당 148㏃(베크렐ㆍ방사능의 단위)을 훌쩍 초과한 라돈 농도 때문이 아니었다. “집값 떨어지는 소리 하지 말고 당장 나가라”던 주민들의 원성에 조 센터장은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한 주민은 조 센터장에게 “한창 이 지역에 개발 분위기가 좋은데 제발 언론에 발설하지 말아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라돈이 얼마나 나오는지 제대로 측정해 감소시키는 게 급선무란 그의 설명도 ‘집값’과 ‘땅값’이란 명분 앞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조 센터장은 20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아이들이 수 백 명씩 생활하는 학교의 교사들마저 라돈이 검출됐다고 경고하고 나면 ‘학교 이미지가 우려된다’는 걱정부터 내세운다”며 하소연했다. 연세대 원주캠퍼스 환경공학부 교수로도 재직중인 그는 국내 유일한 라돈 연구가다.

‘소리 없는 죽음의 가스’라고 불리는 라돈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흡연에 이어 폐암의 주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토양, 지하수, 건축자재 등에 존재하는 이 자연방사능은 주로 건물 벽이나 바닥의 갈라진 틈을 통해 실내로 유입된다. 2015년 148㏃/㎥의 라돈 농도가 지속되는 실내공간에 평생 거주할 경우 한해 2,000명 가까운 폐암사망자가 발생한다는 국내 연구 결과까지 나왔지만 무색무취한 가스인 탓에 국민적 관심은 그 위해성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더구나 피해는 대부분 환기가 잘 안 되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거나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집중된다. 2015년 국립환경과학원 조사 결과 전국의 주택 10곳 중 1곳이 라돈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단독주택, 다세대 주택, 아파트 순으로 농도가 높았다. 그 해 폐암으로 사망한 서울도시철도 직원 두 명도 라돈 농도가 기준치의 10배를 초과한 지하철 배수 펌프장과 터널에서 장시간 근무한 경우였다. 조 센터장은 “토양에 가까운 반 지하 주택 거주자나 집에서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높은 여성들에게 피해가 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정부도 지난해 12월 기존 지하역사, 여객터미널 등 다중이용시설에만 적용되던 기준치 외에, 주택에 200㏃/㎥의 권고기준을 설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실내공기질관리법 개정안 등 대책을 내놨지만 이를 초과해도 별다른 제재는 없다. 기준치를 초과해도 사유재산인 주택을 정부가 일일이 규제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라는 게 조 센터장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개인의 라돈 저감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가장 손 쉬운 대책인 환기부터 바닥이나 벽 등에 갈라진 틈은 없는 지 확인한 뒤 보강재로 막는 것도 방법이다. 건물 밑이나 토양에 라돈 배출관을 설치해 라돈이 실내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방안도 있다. 그는 “자연방사능이 지구 상에서 없어질 수 없는 이상 그 위험성을 파악한 개인이나 단체가 쉬운 대책부터 이행해 나가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미 1990년대 초부터 라돈의 위험성을 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대책을 마련해 온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2000년대 중반이 돼서야 종합관리 대책을 내놓는 등 한참 뒤처진 만큼 시민들의 자발적인 저감 대책 노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최근 그가 속한 연세대 자연방사능 환경보건센터는 2월 22일을 ‘라돈의 날’로 지정했다. 이를 기념해 22일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라돈의 위험성을 알리는 캠페인 및 ‘라돈 SNS홍보단’ 발족식 등 행사를 연다. 날짜는 라돈의 질량수(원자핵을 이루는 핵자의 총수)인 ‘222’에서 따왔다. 이날 기념행사에서 라돈의 위험성에 대한 강연자로 나서는 조 센터장은 거듭 강조했다. “다른 오염물질처럼 라돈은 누가 잘못해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모두의 노력이 중요하죠. 재앙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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