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농성 1644일째
부양의무자 일정 소득 땐 못 받아
비수급 빈곤층 100만명 육박
유승민ㆍ심상정ㆍ민주당 대안
자녀 취업 등 탓 수급 끊기면 안돼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주장
“무책임한 선심성 공약”
일부에선 “연 10조원 예산 소요”
고소득 가정 편법 수급 논란도
지난 20일 ‘장애등급제ㆍ부양의무제폐지 광화문공동행동’의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 농성장. 영하 3도의 추운 날씨에 활동가 5명은 내복과 패딩으로 무장한 채 지하철 이용객을 대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지지해 달라”며 서명 운동을 벌였다. 한 시간 동안 10여명이 서명을 했지만, 대부분은 그냥 지나쳐 갔다. 19대 대선을 앞둔 2012년 8월말 농성을 시작한 이들은 지금까지 1,644일째(21일 기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달 18일 서울도시철도공사 측이 이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리는 등 언제 강제 집행이 이뤄질 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 하루하루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농성장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이들에게 부양의무제란 족쇄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부모와, 혹은 자녀들과 관계가 끊긴 지 오래인데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이라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수십만명에 달한다.
다시 대선이 다가오자 몇몇 대선주자들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나서면서 이슈가 재점화하고 있다. 지난 19일 보수 진영 후보인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복지 1호 공약’으로 약속했고, 심상정 정의당 대표 역시 앞서 폐지를 약속한 바 있다. 민주당은 관련 대선 공약이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전혜숙 의원 등 42명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담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일부개정안을 지난해 8월 발의했다.
이는 현행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현재 기초생활보장 제도는 중위소득(1인 가구 기준 165만2,931원)의 30%(생계급여 수급대상)~50%(교육급여 수급대상) 이하인 저소득층에게 생계ㆍ의료ㆍ주거ㆍ자활ㆍ해산(출산)ㆍ장제(장례) 급여 등을 전부나 일부 지급하고 있다. 다만 1촌인 직계가족을 ‘부양의무자’로 지정해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부양이 불가능한 특수한 사정을 제외하고 부양대상자의 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을 제한한다.
문제는 가족관계 단절이나 부양의무자의 여력 부족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생계 위기에 놓인 빈곤층이 수십만명에 이른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이런 ‘비수급 빈곤층’은 95만명(60만 가구)에 달하며, 이는 올해 기초생활급여 수급 대상자(163만명)의 58%에 해당한다. 보사연의 2015년 복지 패널조사를 보면 기초생활급여 수급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사람(3명 중 2명이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탈락) 가운데 절반 이상(52%)은 탈락 이후 생계 해결 방법으로 ‘이전보다 더 절약하며 생활한다’고 답해 적잖은 이들이 절대 빈곤으로 내몰리고 있음이 드러난다.
기초생활급여 수급자 수준의 빈곤층이면서도 가족이나 정부 어느 쪽의 도움도 기대하기 어려운 이들은 자녀의 취업 등으로 갑자기 수급이 끊기면 삶을 포기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2013년 신부전증으로 입원해 병원비가 월 100만원이 넘게 들었던 부산의 기초생활급여 수급자 아버지가 딸 취업 후 수급 대상자에서 탈락하자, 어렵게 취업한 딸에게 부담을 지울 수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 단계에서 공약이나 발의된 법안을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정부 일각에선 ‘무책임한 선심성 공약’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복지부와 기획재정부는 19대 국회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법안이 발의됐을 때 ‘도덕적 해이’ ‘재정 부담’등을 이유로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따른 재정부담이 유승민 의원이 주장한 ‘연간 8조~10조’를 상회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앞서 국회예산정책처는 민주당 개정안을 기준으로 기초생활보장 급여 수급자가 늘며 연간 10조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를 타깃으로 마련된 복지제도는 생계ㆍ의료급여 등 기초생활보장 급여 이외에도 통합문화이용권, 지방세감면, 에너지바우처 등 50여개에 달한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늘어나면, 기초생활보장 급여뿐만 아니라 관련 사업 예산 모두 증가하는 구조”(정부 관계자)라는 것이다.
또 다른 관건은 고소득 가정의 편법 수급 논란을 어떻게 비껴갈 수 있느냐는 점이다. 가령 고소득층 부모가 자녀에게 일찌감치 자산을 증여한 뒤 현금으로 부양 받으면서, 동시에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등록해 급여를 타가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문진영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거급여, 의료급여, 생계급여 순으로 점진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다면 잠재적인 부정 수급 문제가 발견될 때 개선 방안을 마련할 수 있고 갑작스런 재정 충격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찬반 논란이 여전히 팽팽하지만 노인 빈곤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데다, ‘부모는 자식이 부양해야 한다’는 의식도 희박해지고 있어 부양의무자 기준을 손 봐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더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농성을 시작한 2012년에도 대선주자들이 이 문제를 들여다 봤지만 하나 같이 ‘반짝 관심’에 그쳤다”면서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기초생활급여 수급자 선정 결정에 걸리는 기간이 더 길어지는 등 ‘부양의무제 완화’ 공약과 역행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 대선 때는 달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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