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를 읽고 만약의 목록을 써보았어요. 만약의 목록은 내내 과거로 향했지요. 생각했던 것보다 적었어요. 쓸수록 나를 난처하게 했던 것에서 너를 난처하게 했던 것으로 이동했어요. 되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하겠구나, 하는 것도 여럿이었지요. 봉인된 기억인 ‘돌이킬 수 없는 한 순간’은 가까이 가기도 전에 피했지요. 만약을 붙일 수조차 없는 곳을 누구나 묻어두고 있지요.
침묵과 그림책과 아침은 현명한 시간을 가리키지요. 새벽이 아침의 방향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랩처럼 덮인 어둠이 출렁이는 새벽은 혼돈이에요. “어젯밤에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과 ‘내 옆에 가만히 엎드려 있는 읽다 만 책을 보게 되는 아침’, 만약은 되돌아갈 수 없는 되돌아감과 아직 도착하지 않아 끝내 도착하지 않을 수도 있는 막막함, 양쪽의 선택 지점에 서게 하지요.
만약은 방향표지판 같은 단어 아닐까요? 과거보다 미래에 어울리죠. 오지 않은 시간에 먼저 가 보는 것이죠. 보고 싶지 않은 미래에 만약이라는 단어를 붙여 보면, 지금 어떤 능동성을 발휘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지요. 이럴 때 만약(萬若)의 목록은 만약(萬藥)이 되지요.
이원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