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전역이 하위 리그 축구팀들의 계속된 반란으로 떠들썩하다.
잉글랜드 내셔널리그(5부) 소속 링컨 시티 FC는 18일(한국시간) 프리미어리그(1부) 번리FC와 FA컵 16강 원정에서 1-0으로 승리했다. 종료 1분 전 중앙수비수 션 라제트(24)가 짜릿한 헤딩 결승골을 터뜨렸다. 링컨은 창단 133년 만에 처음으로 FA컵 8강에 올랐다. 5부 리그 이하 팀의 8강 진출은 1914년 퀸즈파크레인저스 이후 103년 만이다.
축구 종가로 자부하는 잉글랜드는 프로축구 리그가 촘촘히 구성돼 있다. 최고 리그는 20팀으로 구성된 프리미어리그, 그 아래 각각 24팀이 속한 챔피언십(2부), 리그1(3부), 리그2(4부)가 있다. 프리미어리그부터 리그2까지 프로다. 그 아래부터는 논-리그(non-League Football)라 불리는 일종의 세미 프로다. 링컨 시티가 소속된 내셔널리그의 경우 생계유지를 위해 다른 직업에 종사하면서 선수로 뛰는 경우도 많다.
링컨 시티가 올해 FA컵 64강에서 챔피언십의 입스위치 타운을 1-0으로 누를 때 결승골을 넣은 내이선 아놀드(30)는 현직 이발사다. 링컨 시티를 이끄는 대니 코울리(38) 감독의 이력도 독특하다. 그는 과거 체육교사로 일하며 파트 타임으로 내셔널리그 브레인트리 타운FC 감독을 맡았다. 내셔널리그에서도 재정이 열악한 팀 중 하나인 브레인트리 타운을 작년에 플레이오프에 올려놔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평소 “온전히 축구 감독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그의 뜻을 알아챈 링컨 시티가 작년 6월 2년 계약에 감독으로 영입했다. 동생인 니키 코울리가 코치로 형을 보좌하고 있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주관하는 FA컵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프로와 아마 팀이 총출동하는 대회라 이따금 이변은 일어나지만 5부 팀이 8강까지 오른 건 이례적이라 영국 언론들도 대서특필하고 있다. 영국 BBC는 “링컨(내셔널리그 1위)과 번리(프리미어리그 12위) 사이에 무려 80팀이 있다”고 소개했다. 결승골의 주인공 라제트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기뻐했고 대니 코울리 감독은 “100번 중에 한 번 일어나는 기회를 우리가 잡았다”고 환호했다.
작년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동화스토리를 써 내려갔던 레스티시티는 올해 FA컵에서는 이변의 희생양으로 몰락했다.
레스터시티는 19일 리그1 소속 밀월FC에 0-1로 패했다. 밀월 수비수 1명이 후반 초반 퇴장 당해 수적으로 우세한 상황에서도 종료 직전 상대 션 커밍스(28)에 결승골을 얻어맞고 무릎을 꿇었다. 닐 해리스(40) 밀월 감독은 “우리는 링컨 시티를 보며 영감을 얻었다. 그들이 이뤄낸 일이 우리보다 더 빛난다”고 벅찬 소감을 전했다.
기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링컨과 함께 내셔널리그에 속한 서턴 유나이티드도 21일 오전 4시 55분 아스날과 FA컵 16강 홈경기를 치른다. 서턴은 내셔널리그에서도 17위에 처져 있는 팀이고 아스날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빅4로 평가 받는‘명가’다. 말 그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과연 서턴이 아스날을 꺾고 잉글랜드 축구에 몰아친 ‘언더독 신드롬’에 마지막 방점을 찍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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