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병원 실습은 소아청소년과였다. 거기서 나는 지금도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날 우리는 회진을 따라 돌고 있었다. 평소처럼 교수님은 병동에 있는 자신의 환아들을 진료하곤 밑 층에 있는 환아를 보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안에는 마침 아이를 동반한 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아주머니는 교수님과 안면이 있던 사이인 듯 반갑게 인사했다. 교수님은 웃는 얼굴로 인사를 받아 주었다. 느낌상 교수님이 늘 보던 보호자는 아니었고 다만 몇 번쯤 마주쳤던 사이로 보였다. 의례적인 인사가 짧게 지나고, 병원인지라 아주머니는 금방 아이에게 화제를 옮겼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 요새 골골대서, 괜찮나 좀 봐주세요.”
막 내려가고 있는 엘리베이터였다. 배운 대로 진료하기에는 환경이 적절하지 않았고 시간도 아주 짧았다. 그래서 막 실습을 나온 우리들은 교수님이 이 난처한 상황에서 과연 아이를 어떻게 진료할지 지켜보았고, 교수님은 전혀 망설임 없이 시작했다. “어디 보자.” 교수님은 일단, 아이에게 손을 뻗어 이마에 손을 댔다. 특이했던 것은 머리 모양이 온전히 느껴지겠다 싶게 오른손으로 아이의 이마를 전부 가리고 왼손으로 뒤통수를 감쌌던 것이다.
그 몸을 굽혀 양손을 뻗은 교수님과, 눈까지 가려진 채 가만히 서 있던 조그마한 아이를 지켜보자, 흡사 열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재는 장면 같았다. 한동안 교수님은 그 상태로 아이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열은 없는데, 많이 골골대나요?”
실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주머니는 아이를 정식으로 진료해달라고 한 것은 아니었고, 다만 아이를 이해하고 사랑을 나누어 주었으면 했다.
그리고 그 찰나에 우리가 보았던 광경은, 이미 충분히 아이를 사랑하고 보듬는 모습이었다. 그 혼잡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얼마나 더 훌륭하게 마음이 오갈 수 있었을까. 아주머니는 아이가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하곤, 감사함을 표시했다. 교수님은 호쾌하게 아이에게 건강 하라는 덕담을 남겼다.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어느덧 응급의학과 의사가 되었다. 일과는 매번 혼잡하고 혼란스러웠고, 죽어가는 사람은 예기치 않게 나타났다. 그래서 각자의 고통에 시달리다 응급실로 몰려든 사람들 중에선, 위급한 다른 사람 때문에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 환자들의 볼멘소리를 듣고 이해시키는 것도 역시 내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견 체온을 측정하는 것 같던 그 장면을 떠올리곤 했다. 의사가 된 나는, 체온을 재는 것은 기계가 가장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일이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정량화된 체온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 있지 않았다.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환자에게 다가가야 했다. 일단 환자와 가까워지며 눈빛을 교환하면, 그 환자가 오래 기다린 탓에 무엇인가 억하심정을 호소하고 싶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환자에게 다가가자마자 이마에 깊게 푹 손바닥을 얹는다. 환자의 이마에서는 온기가 느껴지고, 방금까지 다급했던 열기와 땀내가 훅 밀어 닥친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떻게, 무슨 일로 오셨나요.”
그리고 가만히 그의 마음을 느껴본다. 그 사람에게, 같은 사람으로 성큼 다가가는 느낌이다. “배가 아파서 왔습니다.” “네, 열감도 있으시네요.” 방금 자신의 체온을 나누어 가진 사람을 미워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수 있을까. 나는 대화를 이어가며 그들의 표정이 안온해지는 광경을 본다. 그리고 그들의 호소를 귀담아듣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마에 얹혀 있는 손을 통해 마음을 전달받고, 내가 자신의 고통을 나누어 가질 것임을 직감한다. 그리고 나는 매번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 이 혼란스러운 환경에서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의 마음속에 큰 보폭으로 한 걸음 다가가 사람을 대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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