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기념하기 위해 찍었는데
요즘은 기분내기 위해 촬영요청
스마트폰보다 무서운 불경기
취업준비에 바빠 후배들 사라져
사진사 장외술(72)씨는 14일 씁쓸한 표정으로 서울 마포구 서강대 교정에 서 있었다. 2016학년도 학위수여식장을 빠져 나온 졸업생과 가족들은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올해로 39년째 졸업식 현장을 누벼온 장씨는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사진사 앞에 줄을 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격세지감”이다.
‘손 안의 카메라’ 시대가 온 탓에 사진사를 찾는 일이 줄긴 했지만, 정씨는 “불경기가 더 무섭다”고 했다. 몇 년 전까진 저마다 카메라가 있더라도 특별한 추억을 남기기 위해 기꺼이 사진사들을 찾아 돈을 지불했는데, 요즘엔 얄팍한 가계 주머니 사정에 자식들 취업난까지 겹쳐 10 년째 동결된 졸업식 사진 값(5만원)마저 아까워한다는 것이다.
장씨는 손님 대신 말동무라도 챙겨야한다는 듯 자신의 카메라에 담겼을 법한 졸업식 세태 변화를 담담히 이어갔다. “20년 전엔 어느 학교든 말 그대로 졸업 기념이었죠. 지금은 그나마 이름깨나 있는 대학에만 손님이 있어요.” 명문대 졸업생 부모일수록 ‘기분’을 낸다는 뜻이다. “‘취업했으니 하나 찍어야겠다’고 찾아오면 반가우면서도 가슴이 아파요. 취업하기 정말 힘든가 보구나 하는 생각에. 예전엔 안 그랬거든요.” 사진사 김모(45)씨도 장씨 얘기에 동의했다.
서강대 본관 앞에 삼각대를 세운 최병유(49)씨는 제 카메라는 둔 채 학생들의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셀카’만 찍던 학생들이 단체사진 찍어줄 사람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전문가를 옆에 두고 뭐하느냐”고 나선 것이다. 물론 공짜다.
학생들이 수십 컷의 사진을 돌려본 뒤 “고맙다”고 웃자, 최씨는 “앞으로도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최씨는 “청춘들이 이래저래 눈치 볼 일 많은 세상”이라며 “졸업식만큼은 주인공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사진을 찍어줬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식 사진사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건 썰렁해진 졸업식 풍경이다. 취업이 급한 졸업생들의 불참이 늘면서 가족들 참여도 크게 줄었고, 졸업 날이면 몰려와 학과나 동아리 선배들을 축하해주던 후배들도 요즘은 가방을 짊어지고 도서관으로 향하기 일쑤란다. 최씨는 “떨어지는 매출도 걱정이지만 졸업생이 졸업식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실정이 더 걱정”이라고 쓰게 웃었다.
최씨에게 아들 기념사진을 맡긴 송정선씨 생각도 마찬가지다. “과거엔 자녀 졸업식이 온 가족의 축제였고 부모들은 그날 찍은 자녀 졸업사진을 훈장처럼 여겨 벽에 걸어두곤 했는데, 졸업식 낭만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학부모 김형보씨 역시 “졸업식은 인생에 있어 매우 특별한 날이니만큼 경기가 어렵더라도 한껏 즐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강대 관계자는 “수십 년 전에 비하면 졸업식 참석률이 상당히 낮아진 편이지만 최근 1~2년 사이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추세”라며 “경기가 회복돼 졸업식 분위기도 한층 밝아지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장씨는 이날 졸업생 11명의 추억을 카메라에 담았다. 10년 전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지만 2,3명 찍고 발을 돌린 다른 사진사에 비하면 운수 좋은 날이었다.
글·사진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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