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 부회장 구속
법원, 경영권 승계 뇌물 혐의 인정
朴 대면조사 압박…헌재 심판에도 영향
‘삼성 뇌물’ 의혹에 대해 “엮어도 너무 억지로 엮은 것”이라고 반박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결국 벼랑 끝에 내몰렸다.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와 박 대통령에게 433억원대 뇌물을 공여한 혐의를 받던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구속되면서, 박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도 간접적으로나마 상당 부분 소명됐기 때문이다. ‘삼성-최순실-박 대통령’의 3각 커넥션을 파헤치기 위해 숨가쁘게 내달려 왔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제 종착지만 남겨두게 됐다.
한정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이날 새벽 5시38분쯤 “새롭게 구성된 범죄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삼성이 최씨 측에 금전적으로 지원한 433억원(계약금액 포함)의 구체적인 성격에 대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청탁과 함께 건넨 대가성 뇌물”이라고 했던 특검의 손을 법원이 들어준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구치소에서 수의를 입고 대기하던 이 부회장은 곧바로 구속 수감됐고, 삼성그룹 창립 79년 만에 총수 중 처음 구속되는 불명예까지 안게 됐다.
앞서 특검은 지난달 16일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와 횡령, 위증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뇌물범죄의 대가관계 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했다. 이후 특검은 약 4주 동안 보강조사를 거쳐 14일 재청구한 이 부회장의 2차 영장에서 뇌물의 대가성을 기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지원’에서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작업 전반’으로 확대했다.
청와대가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주식 처분 등과 관련, 이 부회장 측 이익을 늘려주는 쪽으로 관련 기관에 외압을 행사한 증거들도 다수 확보해 법원에 제시했다. 이 부회장 구속 여부를 두고 벌인 1라운드에서 삼성에 ‘판정패’를 당했던 특검이 전세를 뒤집고 ‘완승’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다.
이제 남은 수순은 ‘뇌물수수자’에 해당하는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 단 하나뿐이다. 안종범(5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문형표(61ㆍ구속기소)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비롯, 삼성의 청탁이 최씨 측과 청와대, 집행기관을 거쳐 실제로 실행된 과정에 관여했던 모든 이들에 대한 조사는 사실상 마무리됐다. 묵비권을 행사하긴 했지만 최씨도 특검 조사를 이미 받았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 부회장 구속으로 삼성뿐 아니라 청와대 측에도 빨간 불이 켜지게 됐다”며 “향후 진행될 대통령 대면조사도 특검이 주도권을 쥐고 박 대통령을 압박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실제 대면조사가 이뤄진다 해도 박 대통령은 기존의 ‘부인’ 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특검의 대통령 뇌물죄 수사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돈을 주고받은 양쪽이 부인해도, 그 과정에 관여한 제3자(참고인)의 진술이나 그 당시 상황 등에 비춰 뇌물로 인정된 사례가 다수 있다”며 “재벌 입장에서 모든 걸 희생한다 해도 지키려고 하는 게 ‘경영권’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구속은 박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도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탄핵소추 사유에 ‘삼성 뇌물’ 혐의는 포함돼 있지 않아 엄밀히 말해선 헌재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으나, 박 대통령에 대한 헌재 재판관들의 심증 형성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다음달 10일 전후쯤으로 예상되는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특검과 박 대통령의 ‘마지막 기 싸움’도 그만큼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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