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서 최근 기자들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조심 조심'일 것이다. 권한대행 국무총리 황교안의 행보를 취재하는 기자가 아니라 보수진영의 잠재적 대선후보 황교안을 쫓아다니는 기자들 얘기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출마꿈을 접은 이후 '보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황 대행이 국회에 나타나면 취재진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룬다. 거취 문제엔 소이부답을 즐기는 그이지만, 무심결의 말이나 소소한 행동거지에서 속마음이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 황 대행이 국회에 불려와 본관 출입문에서 본회의장을 오가는 길엔 계단이 많다. 취재진이 한꺼번에 몰리면 사고 위험이 크다. 그래서 황 대행은 거취 질문이 거듭될 때마다 '조심 조심'으로 응대한다. 계단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자꾸 듣다 보니 이 말의 뉘앙스가 묘하다. 대선 공간을 탈없이 건너려면 살얼음 걷듯 처신해야 한다는 자기 최면처럼 들려서다. 얼마 전 그가 본관 출입문을 지날 때 "문 조심하시라"고 말한 것도 뒷얘기를 낳았다. 문(門)이 아니라 문(文)을 조심해야 한다는 이중적 의미를 담았다는 풀이가 나와서다.
▦ 황 대행이 지금껏 취재진에게 내놓은 말은 "(말할) 기회가 있으면 하겠다"나 "적당한 때가 있을 것이다"가 전부다. 대정부질문을 통해 대선 출마 여부를 따지는 의원들에게도 "국내외에 당면한 어려움이 너무 많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며 '조심조심' 모드를 1cm도 벗어나지 않았다. 탄핵기각을 기대하는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건지, 메시아를 기다리는 보수진영의 갈구를 꺾지않겠다는 뜻인지 알 수 없으나 그에게 'Mr. 조심조심'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 'Mr. 조심조심'이 또 한번의 시험대에 올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엊그제 수사기간 30일 연장을 전격 요청해 온 까닭이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1차 수사기간이 많이 남았으니 서둘러 연장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없다" 고 답변한 지 1주일 만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총리실은 지난번 청와대 압수수색 협조를 요청받았을 때처럼 '법대로' 입장을 되풀이했지만 내심 떨떠름한 표정이 역력하다. 조심조심 행보로는 풀기 어려운 과제를 받은 황 대행의 선택이 궁금하다.
이유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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