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상상력
심용환 지음
사계절ㆍ352쪽ㆍ1만6,000원
이승만 대통령은 제왕에 가까웠다. 말도 안 되는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이 통과된 것도 제왕적 권력 덕분이었다. 4ㆍ19혁명 당시 개헌 논의는 자연스럽게 의원내각제로 이어졌다. 하지만 논쟁의 과정은 자연스럽지 못했고 불협화음을 거듭했다. 마땅한 대통령 후보가 없던 자유당이나 민주당 구파는 개헌을 열렬하게 지지했다. 장면이라는 유력한 카드를 가진 민주당 신파는 반대의 모습이었다.
정치공학적인 개헌논의는 또 반복된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정치권만 봐도 그렇다. 개헌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던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을 천명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신중하다. 문 전 대표를 넘어서야 하는 대권 주자들은 개헌에 적극적이다. 관심 돌리거나 현상 유지를 위해, 판세를 뒤집기 위해서 개헌은 소환된다.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 도대체 헌법이 뭐길래?
심용환의 ‘헌법의 상상력’은 헌법이 단지 막연한 문서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대통령을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탄핵할 수 있는 것도, 노동자가 단체행동권을 내세워 파업을 할 수 있는 것도 헌법 덕분이다. 헌법 조문은 어려운 말 투성이고, 또 정략적으로 개정된 것도 사실이지만 일반의 삶에 깊숙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책은 헌법과 헌법의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현실 정치에 지겨움을 느낀 국민이 헌법을 잊을 때, 권력은 기만과 전횡을 일삼기 때문이다.
책은 정석대로 간다. 미국, 독일, 프랑스, 칠레, 북유럽의 헌정사를 횡단하고 대한민국의 헌정사를 종단한다. 석학들의 사상까지 아우르며 책은 ‘좋은 헌법’에 대해 일관되게 묻는다. 동시에 헌법 만능주의는 경계한다. ‘멀쩡하게 있는 법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왜곡을 할 수도 있고, 대통령이 법을 악용할 수도 있고, 의회가 타락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피곤한 일이지만 국민은 더욱 헌법을 에워싸고 ‘헌법 사이에 틈을 내어서는 안’된다.
한국 헌정사를 포괄하는 동시에 이해를 돕기 위해 세계사를 끌어오다 보니 깊이에 갈증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겠다. 새 시대에 맞는 인권이나 성적자율권 등이 미진한 점 또한 아쉽다. 그러나 이 아쉬움은 토론으로 채워야 할 공백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의 헌법은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나. 책은 생산적인 여백을 남긴다. 그 여백을 채우는 일은 독자들의 상상력일 터다.
변해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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