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두 번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결국 구속되며 삼성그룹은 창업 이래 첫 총수 구속이란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동시에 글로벌 기업 ‘삼성의 시계’도 멈춰 섰다. 삼성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게 재계의 전망이다.
17일 서울중앙지법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밤새 대기한 삼성 미래전략실 직원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삼성은 계열사별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총괄하는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할 예정이지만 목표는 ‘현상 유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연말부터 지연된 고위직 인사, 조직 개편, 신사업 발굴 등 경영 전반은 ‘올 스톱’ 될 처지다. 인사 적체로 신규 채용 규모도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은 매년 그룹 차원에서 약 1만5,000명을 채용했다.
이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등기이사가 되고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 미래전략실 해체 등 주요 현안도 당분간 중단이 불가피해졌다.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해외 인수합병(M&A)과 신성장동력 발굴 등은 사실상 ‘시계 제로’다.
국내 기업의 역대 해외기업 M&A 중 최대인 미국 전장기업 하만 인수도 삐걱거릴 우려가 생겼다. 당장 우리 시간으로 이날 오후 11시 시작되는 하만 주주총회 결과도 낙관이 어렵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한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도 삼성에는 위험 요소다. 결과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뇌물공여로 성사됐다는 것을 사법기관이 입증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은 삼성은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 등의 적용 대상이 돼 국제적 제재를 받을 가능성도 커졌다. 해외 유수 언론들은 이 부회장 구속소식을 긴급 뉴스로 앞다퉈 송출하며 ‘삼성의 추락’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주식 처분, 중간금융지주회사제도 도입 등 경영권 승계 작업 전반이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낙인 찍혀 경영권 승계조차 불투명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정도면 총수가 없어도 기존 시스템으로 굴러는 가겠지만 미래 먹거리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현 상황에서는 그 자체가 곧 치명적인 타격”이라고 밝혔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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