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에 우편물 1400통“짐될까 휴가 쓰기도 미안해”
집배원 임웅재씨
우체국 복귀 중 사고 동료 대신
3주째 480세대 추가로 맡아
“연차 5일 써… 이것도 많은 편”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밥벌이의 고단함은 공통 운명. 그래서 ‘남들 다 하는 일’이라는 진통제 같은 자기 위로에 절어 있다가 접하는 일상의 죽음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지난달 27일 주간 근무를 마친 서울지하철7호선 기관사 오모씨는 승무사업소에서, 그 나흘 뒤 파주우체국 위탁배달원 안모씨는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쓰러져 과로로 숨졌다. 아침에 올라탄 전철 끝 칸에, 현관에서 집어 든 택배상자에 묻어 있을 그 고단함을 좇아가봤다.
15일 오후 인천 옥련동 옥골마을 비탈길로 집배원 임웅재(38)씨가 오토바이를 몰고 올랐다. 마을 기슭 산자락에 어림잡아 40도 수준의 급경사가 50m 가량 이어져 위험천만하다. 임씨는 평소 다른 길로 둘러갔지만 집을 비웠던 수신인의 재방문 요청으로 급히 비탈길을 오르내렸다. 임씨는 “위험한 걸 알면서도 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임씨는 지난달 설 연휴를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한 팀 동료 일까지 나누어 맡고 있다. 동료는 우체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에 치여 갈비뼈 5대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어 언제 돌아올지 기약이 없다. 임씨는 벌써 3주째 원래 담당인 2,141세대에 480세대를 추가로 챙기고 있다. 이날은 1,401통의 우편물이 오토바이에 담겨 있다.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신속배달을 담보해야 할 오토바이는 주택가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시간당 40여 곳을 방문하느라 오토바이는 5초마다 가다 섰다. 건물 앞에 멈출 때마다 임씨는 오토바이에서 뛰어 내려 건물 입구 우체통에 수십 개의 우편물을 빠른 속도로 집어 넣는다. 반송함에 꽂힌 수십 개의 고지서와 쓰레기 사이로 하나하나 우편물을 확인해 우체국에 되가져갈 편지도 챙긴다.
등기우편 전달은 난제였다. 수신인에게 직접 전달해야 해 100여 차례나 주택 계단을 뛰어올라야 했다. 외국인들에게 손짓발짓으로 우편물을 전달하는 일이 수 차례.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는 집이 많아 통지서를 붙이고 다음날 다시 방문해야 하는 등기우편도 20여 통에 이르렀다. 임씨는 “쉴새 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오후 5시 배달을 마치고 우체국에 돌아온 임씨는 다시 자리에 앉아 1,600여 통에 이르는 우편물을 40여 구역으로 나눠 하나하나 분류하기 시작했다. 미리 해놓지 않으면 배달에 나설 수 없기 때문. 임씨는 오후 8시가 돼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토요 택배가 재개된 2015년 9월 이후 이런 일상이 주 6일 이어지기도 한다.
그는 “지난해 연차를 5일 사용했는데 이것도 많이 쓴 편”이라며 “누군가는 매일 처리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휴가를 쓰는 것조차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인천우체국 집배원 61명의 지난해 연차 평균 사용일수는 3.6일에 불과하다. 우정본부가 밝힌 전국 집배원 평균 연차 사용일수는 6일이었다. 집배원들은 “일할 사람도 부족하고 동료에게 미안해 아파도 쉴 수 없다”고 했다.
그들에게 업무 뒤 휴식은 사치로 보였다. 지난 1년 동안 집배원 7명이 돌연사했고, 2명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소음 가득한 2평 남짓 기관실 “미세먼지 싸여 쉼없이 3시간”
지하철 기관사 박영민씨
기대수명 지난 노후 전동차
진동ㆍ굉음 고스란히 전달돼
“잇단 사고… 부담감 짓눌려”
“화장실은 다녀오셨어요?”
15일 오전 8시30분, 서울 중구 을지로 서울메트로 동대문승무사업소에서 만난 기관사 박영민(45)씨는 ‘몸을 가볍게’ 만들 것부터 주문했다. 서울지하철2호선을 두 바퀴 도는 약 3시간 일정부터 소화해야 하는데, 운행 도중엔 생리현상을 해결할 길이 마땅치 않다고 했다.
특수 제작된 소변봉투와 대변봉투가 기사들에게 제공되기도 한다. 운행간격 등에 지장을 줄까 봐 정작 잘 쓰진 못한다. 박씨는 “정 급하면 신대방역에 있는 승무원전용 간이화장실에 가지만 대변볼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고 했다. 애초 ‘위급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이란 얘기다.
전동차 기관실에 들어서자 2평 남짓 공간에 설치된 낡은 설비들이 눈에 들어왔다. 1991년 도입돼 27년째 서울을 누비는 이 전동차는 지난달 22일 잠실새내(옛 신천)역 지하철 화재 사고 당시 차종과 같다. 기대수명(25년)이 이미 지났지만 이명박 정부 때던 2012년 내구연한 규정이 삭제돼 지금도 운행 중이다.
객실 안전 점검은 꾸준히 이뤄진다지만 기관실 내부 사정은 열악했다. 출입문과 차체가 완전히 맞닿지 않아 전동차가 속도를 낼 때면 덜덜거리는 소음이 귀를 때렸다. 임시방편으로 문 틈을 나무로 괴어 고정시키면 곧 창문이 덜덜거렸다. 창문 곳곳엔 소음을 막기 위해 붙인 것으로 보이는 테이프 자국도 선명했다.
박씨는 “소음은 물론, 문 틈으로 들어오는 터널 내 미세먼지는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위장장애도 기관사들이 달고 사는 대표적 질병”이라고도 했다. 규칙적인 식사도 못할뿐더러, 좁은 공간에 오랜 시간 앉아 있을 때가 많아서다.
몸도 몸이지만 박씨가 진짜 걱정하는 건 ‘마음의 병’이다. 지난달에만 잠실새내역 지하철 화재, 서울도시철도 기관사 사망 등 안 좋은 소식이 연거푸 전해지다 보니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불안해 한다. 아내가 진작부터 “행정직으로 바꿀 수 없느냐”고도 했지만 이제 “걱정 말라”달래기도 머쓱해졌단다.
특히 이날처럼 노후 전동차를 운행할 때면 사고 부담감이 더 짓누른다. 승객들이 몰리는 퇴근시간 박씨 얼굴엔 긴장감이 더해졌다. 승객들은 그런 그를 볼 수 없다.
퇴근 후에도 그는 사생활 대신 여전히 열차 안 생활을 이어갔다. “안전운행을 위해 외부 약속을 거의 잡지 않아요. 다음날 운행을 위해 우유, 술은 절대 하지 않죠.”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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