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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노인에게 소 수십 마리 직접 접종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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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노인에게 소 수십 마리 직접 접종하라니…”

입력
2017.02.1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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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무조건 모두 접종” 통보만

노인들 직접 주사 들어 보지만

겁 먹은 700kg 거구 통제 어려워

움직이면 약물 새어 나오고

송아지가 백신 못 이겨 폐사도

“부작용에 접종 꺼리는 경우 많아”

이현주기자가 15일 충남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의 한 한우 농가에서 지역 공수의와 함께 암소에 영양제를 주사하고 있다. 당진=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이현주기자가 15일 충남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의 한 한우 농가에서 지역 공수의와 함께 암소에 영양제를 주사하고 있다. 당진=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네? 송아지 두 마리가 폐사했다고요?”

충남 당진시 공수의(지자체가 가축방역업무를 위탁한 민간 수의사)인 정한영 충남동물종합병원장은 최근 왕진을 나갔던 한 한우 농가에서 이러한 연락을 받았다. 구제역 백신 접종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보였다. 본보 취재진은 지난 15일 정 원장과 함께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한창오(70)씨를 찾아갔다. 현장에 도착해 축사 바닥을 덮고 있던 천막을 걷자 아직도 솜털이 뽀얀 송아지 두 마리가 축 늘어져 있었다. 한 마리는 태어난 지 3일 만인 지난 11일 백신 주사를 맞은 뒤 변을 당했다. 나머지 한 마리도 예정일보다 열흘 먼저 세상에 나왔다가 결국 얼마 못 가 숨졌다. 백신을 맞은 어미소가 조산을 한 경우였다.

통상 분만이 며칠 안 남은 만삭우나 생후 2개월 미만의 어린 송아지는 백신 접종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한 마리도 빼놓으면 안 된다’는 공무원의 엄포와 강압을 한씨는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그는 “백신 접종 전엔 팔팔 뛰어 다니던 녀석들이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 원장은 “사람으로 치면 만삭인 산모에게 독감 주사를 놓은 셈”이라며 혀를 찼다.

현장에선 정부의 방역 책임 떠밀기에 뿔이 난 농가들이 적지 않았다.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서 한우 25마리를 키우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영세농 전양환(70)씨는 최근 면사무소로부터 모든 소에 한꺼번에 백신을 접종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전씨는 “젊은 소는 삼부자가 끌려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힘이 세, 혼자서는 통제할 수가 없다”며 “자식들은 출가했고 근처에 도움을 받을 곳도 없는데 전부 알아서 자가 접종을 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로 무게가 500~700㎏인 소에게 주사기를 들이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날 기자가 공수의의 도움을 받아 10세 암소에게 영양제 접종을 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숙련된 이가 아니면 소의 뿔을 잡아매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주사기를 본 소의 눈이 당장 쏟아질 것처럼 커지자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겁이 났다. 눈치를 채고 멀리 도망가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간신히 소의 뿔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주사를 놓다가 뒷발에 채여 다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는 게 전씨의 설명이었다. 정 원장은 “접종 순간에 소가 움직이면 약물이 피하에 고여 밖으로 새기도 한다”며 “고령 농가들은 이웃끼리 ‘접종 품앗이’라도 해야 되는데 접종 부작용이 많다 보니 피차 곤란해 질까봐 돕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전문가인 지역 공수의들에게 백신 접종비를 지원해 대형농가와 영세농가를 일괄 접종하는 방법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6명이 전부인 당진시 공수의들이 1,300여 농가(4만3,000여마리)를 모두 책임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당진시청 방역 관계자는 “민간 개업 수의사들에게 접종을 위탁하려 해도 전염병이 퍼지면 수의사들부터 행동이 제약되기 때문에 나서려는 이가 적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농가 단위 방역 책임을 강조하기 전에 공공 방역 인프라부터 확충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옥경 대한수의사회장은 “일본처럼 지역 수의사들이 주치의 개념으로 농가들을 관리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가축질병공제제도 등이 검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당진=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충남 당진 공수의인 정한영 충남동물종합병원 원장이 정미면 수당리 한우 사육농가에서 구제역 백신 접종을 한 소들을 살펴보고 있다. 당진=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충남 당진 공수의인 정한영 충남동물종합병원 원장이 정미면 수당리 한우 사육농가에서 구제역 백신 접종을 한 소들을 살펴보고 있다. 당진=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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