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 이후 북중관계가 폭풍전야다. 중국이 겉으로는 신중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부에서 북한의 전략적 자산가치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중국이 김정은 체제를 인정해 김정남과 일정 거리를 둬왔는데도 ‘암살’로 도발을 해왔고, 결과적으로 대북 영향력 행사가 힘들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당장 북한과 척을 지지는 않겠지만, 북중관계는 근본적인 재조정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
중국은 16일에도 김정남 피살 사건에 대해 극도로 신중한 반응을 보였고 일부에선 우호관계를 강조하기까지 했다. 겅솽(耿爽)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보도와 사건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북중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중국과 북한은 우호적인 이웃 국가”라고 선을 그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다소 뜬금없이 ‘북핵 위기를 풀기 위해선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칼럼을 싣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는 내부적으로 상당히 격앙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 피살 사건이 알려진 뒤 북중 접경지역에 군을 신속하게 증강배치한 것은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비책이면서 동시에 북한을 향한 무력시위의 성격도 갖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의 2인자로 꼽히는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이번 사건 해명을 위해 방중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 베이징(北京)의 한 정보통은 “김정남이 피살된 13일 오후부터 중국 지도부가 수 차례 회의를 열었고 공안ㆍ정보분야 고위인사가 말레이시아로 급파된 것으로 안다”면서 “사건의 실체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중국 정부가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겠지만 북한을 향해선 다양한 방식으로 경고 메시지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진짜 고민은 김정남 피살로 대북 지렛대가 거의 사라졌다는 데 있다.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명실상부한 세계 주요 2개국(G2)을 지향하는 한 미국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북한의 전략적 자산가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 북한의 잇따른 핵ㆍ미사일 도발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와중에도 중국이 식량ㆍ원유 지원 등으로 북한의 숨통을 트여준 이유다. 대신 중국은 김정일 집권기에 장성택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장성택이 처형된 후엔 김정남을 보호함으로써 북한의 행동반경을 제약해왔다. 중국이 북한의 고사를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김정남의 피살은 북한을 컨트롤할 수 있는 기제가 사라진다는 의미일 수 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자국의 필요에 의해 북한을 지원은 하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어지게 된 것이다.
물론 김정남 피살의 배후가 김정은이라는 명확한 물증이 드러날 경우 중국도 국제사회의 대북 비판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이 사건이 미궁에 빠질 경우 중국으로서는 특별한 대응을 할 필요가 없고, 접경지역의 혼란 등 예상가능한 우려를 잠재우는 데에만 집중하면 된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중국의 대북 영향력 행사 가능성은 이전보다 약화할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중국이 양국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조정할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든다. 대만 문제나 남ㆍ동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지어 북한 문제를 협상카드로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북한이 중국의 영향력을 벗어나 미국과 직접대화를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란 분석과 맥이 닿아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중국은 그간 자신들의 필요 때문에 북한의 핵ㆍ미사일과 관련한 도발을 사후에 마지못해 인정해왔다”면서 “북한이 자신들의 말을 안 듣고 미국을 직접 상대할 가능성이 커진다면 아예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려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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