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인사 앞두고 사실상 ‘최 게이트’ 마지막 과업
특검 ‘대통령 뇌물죄’ 입증 성패는 이들의 손에
늦어도 17일 새벽엔 결정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여부는 ‘최순실 게이트’ 수사의 최대 분수령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지배권을 강화할 계산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최씨 측에 433억원의 뇌물을 건넸다는 판단 아래, 한 달 만에 재청구된 이번 구속영장을 법원이 발부할지 기각할지에 따라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삼성그룹의 희비는 극명히 갈릴 전망이다. 특히 오는 28일 수사기한이 끝나는 특검 입장에선 이 부회장 구속이 박 대통령 뇌물죄 입증이라는 수사 최대 목표의 성패를 가를 관건이다.
특검과 삼성그룹 못지 않게 피 마르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들이 바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 3인일 터(▶관련기사). 이번 영장심사 담당자인 한정석(40ㆍ사법연수원 31기) 판사와 조의연(51ㆍ사법연수원 24기)ㆍ성창호(45ㆍ사법연수원 25기) 부장판사는 특검이 출범한 지난해 12월 이래 줄곧 최순실 게이트 핵심 인사의 구속 여부를 결정하며 주목 받았다. 특히 지난달 19일 조 부장판사가 이 부회장에 대한 첫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을 땐 격렬한 찬반 논쟁의 복판에 서야 했다. (▶ 관련기사)
‘법관 개개인이 독립된 재판부’라는 원칙에도 불구, 결정의 일관성을 위해 주요 사건은 영장전담 판사 간 사전 협의를 거치는 것이 관행으로 알려지면서 세 사람을 ‘운명 공동체’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들이 특검의 청구를 받아들여 구속영장을 발부한 인사는 ▦박 대통령-삼성그룹 뇌물 커넥션 관련 1명(문형표)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이화여대 특혜 입학 관련 5명(최경희 이인성 남궁곤 김경숙 류철균)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5명(김기춘 조윤선 김종덕 정관주 신동철) ▦의료농단 관련 1명(박채윤) 등 모두 12명. 반면 이 부회장,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재청구 땐 발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구속영장은 기각했다.
지난해 2월부터 나란히 영장전담 판사를 맡고 있는 이들은 모두 오는 20일 법원 정기 인사를 통해 근무지를 옮길 예정이라, 이번 이 부회장 구속영장 심사는 세 판사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수행하는 마지막 과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어깨가 무거운 영장전담 판사 3인의 면면을 살펴봤다.
● 한정석 판사
이 부회장 구속 여부 결정의 중책을 맡게 된 한정석 판사는 나이와 연수원 기수에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 중 가장 후배다.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해 1999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육군 법무관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수원지법 판사로 임관했다. 이후 서울중앙지법, 대구지법 김천지원, 수원지법 안산지원을 거쳐 2015년부터 다시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하고 있다. 오는 20일 인사 땐 제주지법 부장판사로 승진 전보될 예정이다.
법조계에서 이름처럼 ‘정석’에 충실한 법관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조용하고 성실한 스타일로 법과 원칙을 강조한다는 평이다. 연수원 동기 중 나이가 어린 편인데도 법원 내 요직으로 꼽히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를 맡은 것도 그에 대한 조직의 신망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 판사는 영장전담 판사를 맡아 ‘넥슨 주식 대박’ 사건의 진경준 전 검사장, ‘스폰서 검사’ 사건의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지난해 검찰이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할 당시엔 최순실씨,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 핵심 피의자의 구속영장이 한 판사의 결정으로 발부됐다. 특검 출범 이후엔 남궁곤 전 이화여대 입학처장의 구속영장은 발부한 반면,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에 대한 첫 구속영장 청구 땐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 조의연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 중 최선임이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92년 사법고시와 행정고시에 동시 합격한 그는 1998년 대구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사법연수원 교수, 인천지법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 등을 거쳤다.
조 부장판사는 법리를 꼼꼼히 따지는 원칙주의자로 평가 받는다. 기록 검토를 워낙 철저히 하는 터라 그가 맡은 영장심사 결과가 가장 늦게 나오는 편이라고 한다. 지난 1월 이 부회장에 대한 1차 영장 청구 땐 오전 10시30분 실질심사를 시작한 뒤 다음날 새벽 5시50분에야 기각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9월에 맡았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구속영장 청구 건 역시 실질심사 다음날 새벽 4시가 다 돼서 청구를 기각했다.
검찰의 최순실 게이트 수사 땐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석비서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조 부장판사가 발부했다. 특검 출범 후엔 구속영장이 청구된 15건(최경희 전 총장은 2건) 중 8건의 심사를 맡았는데, 이 중 이 부회장과 김상률 전 수석에 대한 영장은 기각했다.
● 성창호 부장판사
서울대 법대 재학 중이던 1993년 사법고시에 합격해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 수원지법 등에서 풍부한 재판 경험을 쌓았다. 법원행정처 인사심의관, 대법원장 비서실 판사 등 법원 내 엘리트 코스도 거친 그는 균형 감각이 뛰어나고 법 이론에도 해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로서 지난해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대우조선해양 회계사기 수사 과정에서 청구한 남상태 대우조선 사장, 박수환 뉴스커뮤니케이션스 대표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홍만표 전 검사장, 김수천 인천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도 성 부장판사가 담당했다. 지난해 9월엔 고 백남기씨의 부검영장을 발부하며 주목 받았다.
특검의 최순실 게이트 수사 과정에선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최경희ㆍ김경숙ㆍ류철균 등 정유라 입학 비리와 연루된 이화여대 교수들 역시 성 부장판사의 결정으로 철장 신세를 지게 됐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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