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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다노 브루노

입력
2017.02.1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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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2.17

종교개혁 광풍에 르네상스의 자유가 실직하려던 경계에 조르다노 부르노가 화형됐다. 그는 지적 자유의 순교자였다. 로마 피오레광장의 부르노 동상.
종교개혁 광풍에 르네상스의 자유가 실직하려던 경계에 조르다노 부르노가 화형됐다. 그는 지적 자유의 순교자였다. 로마 피오레광장의 부르노 동상.

16세기 종교개혁은 종교적 관용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성서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온갖 이설들로 뭉치고 흩어지곤 하던 르네상스의 종교적 활기는 마르틴 루터의 카리스마와 도그마 속에 급속도로 종적을 감춰 갔다. 1600년 2월 17일, 그 시대적 분수령 위에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의 화형대가 놓였다.

그는 ‘무한 우주론’과 ‘지동설’의 신봉자였다. 그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일 뿐이라는 코페르니쿠스적 우주론에서 나아가 우주는 무한하고 밤하늘의 뭇 별들이 모두 항성이며, 태양은 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와 유사한 주장은 15세기 철학자 쿠자누스 등에 의해서도 모색돼 온 것이었지만, 브루노의 시대는 신ㆍ구교가 종교 이념과 권력을 두고 전쟁을 하던 시대였다.

직업군인의 아들로 1548년 태어나 10대에 나폴리에서 고전문학과 논리학 등을 공부한 그는 65년 도미니크 수도회에 들어 24세이던 72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던 아리우스파의 이단 학설을 탐구한 탓에 이단 시비가 일자 76년 로마로 피신했고, 북부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지를 떠돌다 칼뱅주의로 개종했지만, 역시 주류와의 불화 속에 신교 역시 비관용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등을 돌린다. 프랑스와 영국 등지를 주유하며 옥스퍼드대 등서 강의하며 자신의 우주론과 신학-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부정, 신비주의적ㆍ범신론적 사고, 마리아의 처녀성 부정 등- 이론을 펼쳤다.

종교재판에 회부된 그는 무려 8년 동안 심문을 받으면서도 끝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예수회 추기경 로베르토 벨라르미노가 사형을 선고하자 “내 형량이 선고되는 것을 듣는 당신들의 두려움이 나의 두려움보다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는 설이 있다.

그를 과학의 순교자로 보는 데는 이견이 있다. 그의 우주관은 근대적인 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과학과 거리가 먼 신비주의자였고, 마술이나 점성술 등에도 관심을 쏟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지적 탐구와 사상ㆍ신념의 자유, 다시 말해 저무는 르네상스의 어둠을 밝히고자 목숨을 바쳤다.

1899년 빅토르 위고 헨리크 입센, 바쿠닌 등이 로마 캄포데 피오레 광장에 그의 동상을 세우며 쓴 문구가 그러했다. “브루노에게- 그대의 몸에 지펴진 불로 시대의 미래가 밝혀졌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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