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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도 함께 접는다... 종이접기에 빠진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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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도 함께 접는다... 종이접기에 빠진 어른들

입력
2017.02.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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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링북에 이은 '안티 스트레스' 책으로 종이접기 책이 주목 받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컬러링북에 이은 '안티 스트레스' 책으로 종이접기 책이 주목 받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김재원(21)씨는 ‘종이접기 전도사’다. 어릴 적 우연히 시작했던 종이 접기를 지금도 즐긴다. 덩치 큰 남자 대학생이 앉아서 뭐 하는 짓이냐는 지청구도 가끔 듣지만, 개의치 않는다. 간편하게 즐길 만한 취미 생활로 이만한 게 없다고 여긴다. 어려운 작품에 성공했을 땐 적지 않은 희열도 느낀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추천해요.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 책상에서 조금씩 해보면 머리가 정말 맑아질 거에요. 저도 그랬거든요.”

뼈대 만드는 데만 일주일 걸린, 김재원씨의 30cm 높이 종이로봇. 어려운 작품을 하고 나면 엄청난 성취감이 밀려든다. 김재원(NATHAN) 제공
뼈대 만드는 데만 일주일 걸린, 김재원씨의 30cm 높이 종이로봇. 어려운 작품을 하고 나면 엄청난 성취감이 밀려든다. 김재원(NATHAN) 제공

대기업 부장 이형곤(45)씨의 취미도 종이접기다. 이씨는 멋쩍게 웃었다. “처음엔 내가 이걸 왜 하나 싶었는데, 계속 접다 보니 중독되었나 봐요.” 입문은 마흔 넘어 본 늦둥이 때문이다. 회의에, 야근에, 출장에 바쁜 그에게 아내는 ‘늦둥이까지 독박 못쓴다’고 선언했다. 주말이라도 함께 놀아주기 위해 제일 만만하게 골라잡은 게 종이접기였다. 정작 딸아이는 몇 달 하다 말았는데, 주말마다 이씨는 종이접기 책을 뒤적인다.

‘안티 스트레스’를 내걸고 한동안 복잡한 밑그림 위에 색을 입히는 ‘컬러링북’, 유명 작가들의 시나 에세이 등의 한 구절을 베껴 쓰는 ‘필사책’이 인기를 끌었다. 그 유행은 어디로 향할까. 이제는 ‘종이접기’ 책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제 손으로 직접 뭔가 만드는 과정에 몰입함으로써 머리를 텅 비워준다는 점에서는 똑 같은 원리다.

출판사 싸이프레스는 이 흐름을 타고 영국의 종이접기 강사 사무엘 창의 책 ‘종이접기, 마음펴기’를 내놨다. 제목 그대로 종이를 접다보면 마음이 활짝 펴질 것이란 메시지를 담았다. 그동안 종이접기를 하려면 아이 책을 뒤적여야 했지만, 이 책은 아예 성인용 종이접기 책을 표방했다.

예전의 종이접기 책은 '아동용'으로 분류됐다. 이젠 '실용' '취미'영역으로 출간된다. 종이접기가 슬슬 어른의 취미생활에 진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예전의 종이접기 책은 '아동용'으로 분류됐다. 이젠 '실용' '취미'영역으로 출간된다. 종이접기가 슬슬 어른의 취미생활에 진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성인용이라 해서 야한 내용이 들어간다거나, 접기의 난이도를 한껏 끌어올리는 쪽은 아니다. 종이접기에 얽힌 이야기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가령 코끼리 접는 법에서 ‘종이접기, 마음펴기’의 저자는 2014년 영국의 한 동물원에서 진행한 ‘코끼리 3만개 접기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다. 3만개는 생존한 야생 코끼리 개체수를 의미한다. 멸종 위기에서 코끼리를 보호하자는 의미다. 이 프로젝트는 대성공을 거뒀고, 3만개의 종이 코끼리는 동물원에 고스란히 보존됐다. 싸이프레스 이유섭 부장은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과학자, 공학자들이 종이접기 원리에 대한 전문서적을 내는 등 종이접기가 당당한 성인용 취미생활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말했다. 실제 종이접기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미국 작가 로버트 랭은 메사추세츠공대(MIT) 출신으로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근무했던 물리학자다. 그가 운영하는 웹사이트(http://www.langorigami.com)는 각종 동ㆍ식물 등을 가장 실물에 가깝게 접은 작품들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종이접기의 인기는 지난해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종이접기 전문가 김영만씨가 출연해 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자극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김씨의 종이접기 방송을 보고 자란 이들은 김씨의 방송 출연을 격하게 환영했다. 오경해 한국종이접기협회 회장은 “어릴 적 본격적으로 종이접기를 해본 세대가 크면서 국내에서도 이제 전문 작가군이 형성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비용, 시간,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나름의 성취감을 준다는 점에서 종이접기는 성인들의 취미가 될 충분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안티 스트레스’ 책의 원조격인 필사책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새봄출판사가 최근 내놓은 ‘그립을 흘긴 눈’은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느린 우체통’ 콘셉트를 따왔다. 윤동주, 현진건 등 유명 작가들의 글을 베껴 쓰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다 베껴 쓴 책을 출판사에 보내면 정해둔 기한 뒤에 미리 지정한 사람에게 보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신에게, 혹은 연인이나 가족에게 보내는 일종의 ‘타임캡슐’인 셈이다. 새봄출판사 관계자는 “작가 지망생을 넘어 일반 대중에게까지 더 확장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본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변해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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