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21)씨는 ‘종이접기 전도사’다. 어릴 적 우연히 시작했던 종이 접기를 지금도 즐긴다. 덩치 큰 남자 대학생이 앉아서 뭐 하는 짓이냐는 지청구도 가끔 듣지만, 개의치 않는다. 간편하게 즐길 만한 취미 생활로 이만한 게 없다고 여긴다. 어려운 작품에 성공했을 땐 적지 않은 희열도 느낀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추천해요.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 책상에서 조금씩 해보면 머리가 정말 맑아질 거에요. 저도 그랬거든요.”
대기업 부장 이형곤(45)씨의 취미도 종이접기다. 이씨는 멋쩍게 웃었다. “처음엔 내가 이걸 왜 하나 싶었는데, 계속 접다 보니 중독되었나 봐요.” 입문은 마흔 넘어 본 늦둥이 때문이다. 회의에, 야근에, 출장에 바쁜 그에게 아내는 ‘늦둥이까지 독박 못쓴다’고 선언했다. 주말이라도 함께 놀아주기 위해 제일 만만하게 골라잡은 게 종이접기였다. 정작 딸아이는 몇 달 하다 말았는데, 주말마다 이씨는 종이접기 책을 뒤적인다.
‘안티 스트레스’를 내걸고 한동안 복잡한 밑그림 위에 색을 입히는 ‘컬러링북’, 유명 작가들의 시나 에세이 등의 한 구절을 베껴 쓰는 ‘필사책’이 인기를 끌었다. 그 유행은 어디로 향할까. 이제는 ‘종이접기’ 책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제 손으로 직접 뭔가 만드는 과정에 몰입함으로써 머리를 텅 비워준다는 점에서는 똑 같은 원리다.
출판사 싸이프레스는 이 흐름을 타고 영국의 종이접기 강사 사무엘 창의 책 ‘종이접기, 마음펴기’를 내놨다. 제목 그대로 종이를 접다보면 마음이 활짝 펴질 것이란 메시지를 담았다. 그동안 종이접기를 하려면 아이 책을 뒤적여야 했지만, 이 책은 아예 성인용 종이접기 책을 표방했다.
성인용이라 해서 야한 내용이 들어간다거나, 접기의 난이도를 한껏 끌어올리는 쪽은 아니다. 종이접기에 얽힌 이야기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가령 코끼리 접는 법에서 ‘종이접기, 마음펴기’의 저자는 2014년 영국의 한 동물원에서 진행한 ‘코끼리 3만개 접기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다. 3만개는 생존한 야생 코끼리 개체수를 의미한다. 멸종 위기에서 코끼리를 보호하자는 의미다. 이 프로젝트는 대성공을 거뒀고, 3만개의 종이 코끼리는 동물원에 고스란히 보존됐다. 싸이프레스 이유섭 부장은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과학자, 공학자들이 종이접기 원리에 대한 전문서적을 내는 등 종이접기가 당당한 성인용 취미생활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말했다. 실제 종이접기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미국 작가 로버트 랭은 메사추세츠공대(MIT) 출신으로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근무했던 물리학자다. 그가 운영하는 웹사이트(http://www.langorigami.com)는 각종 동ㆍ식물 등을 가장 실물에 가깝게 접은 작품들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종이접기의 인기는 지난해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종이접기 전문가 김영만씨가 출연해 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자극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김씨의 종이접기 방송을 보고 자란 이들은 김씨의 방송 출연을 격하게 환영했다. 오경해 한국종이접기협회 회장은 “어릴 적 본격적으로 종이접기를 해본 세대가 크면서 국내에서도 이제 전문 작가군이 형성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비용, 시간,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나름의 성취감을 준다는 점에서 종이접기는 성인들의 취미가 될 충분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안티 스트레스’ 책의 원조격인 필사책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새봄출판사가 최근 내놓은 ‘그립을 흘긴 눈’은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느린 우체통’ 콘셉트를 따왔다. 윤동주, 현진건 등 유명 작가들의 글을 베껴 쓰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다 베껴 쓴 책을 출판사에 보내면 정해둔 기한 뒤에 미리 지정한 사람에게 보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신에게, 혹은 연인이나 가족에게 보내는 일종의 ‘타임캡슐’인 셈이다. 새봄출판사 관계자는 “작가 지망생을 넘어 일반 대중에게까지 더 확장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본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변해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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