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은평구에서 폐지를 주워 홀로 생활을 이어가던 조모(75)씨는 2013년 자신의 동네로 이사 온 제모(64)씨를 만났다. 무뚝뚝한 성격인 제씨는 유독 조씨에게만은 자신의 속내를 터놓으며 정을 붙였다. 남편과는 헤어진 지 오래됐고 아들도 먼 데 있어, 혼자 떠돌며 공사현장에서 식당 일을 하고 살았다고 했다. 조씨는 힘들어하는 제씨가 안타까워 경기 용인시와 부천시, 인천 영종도에 함바집(공사장 식당)을 열 계획이라는 제씨에게 모아뒀던 100만원을 선뜻 빌려줬다.
시작에 불과했다. 제씨는 조씨에게 보증을 서달라고 한 뒤 500만원을 대신 내게 하는 등 2년간 총 1,030만원을 가져갔다. 폐지를 줍고 월 20만원씩 통장에 들어오는 기초연금을 모은 돈이었다. 조씨는 제씨를 자주 만날 수 없었지만 공사 때문에 바쁘겠거니 생각하며 돈을 곧 갚을 거라는 제씨 말을 믿었다. 그러나 제씨는 2015년 6월 이후 종적을 감췄다. 전입신고마저 조씨의 집으로 돼 있어 찾아낼 방도가 없었다.
조씨가 다시 제씨의 이름을 들은 건 지난달 중순 경찰에서 걸려온 전화에서였다. 사기 피해자 5명이 제씨를 고소했는데, 주소가 조씨 집으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제씨가 함바집을 열어 이익금을 돌려주겠다는 말을 믿고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었다.
서울 서부경찰서는 7년간 여성 6명에게서 1억 4,000여 만원을 뜯어낸 혐의(사기)로 제씨를 추적 끝에 검거, 구속했다고 15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제씨는 파주에서 군포까지 주거지를 옮겨가며 여성 노인들에게 돈을 뜯어낸 후 생활비로 탕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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