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숨진 김정남은 지난 2001년 5월 가짜 여권으로 일본 입국을 시도한 이후 김정일의 눈밖에 나면서 해외를 떠도는 신세가 됐다. 이국땅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은 단초가 이때의 무모한 행동부터 잉태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후 그는 숨지기 직전까지 행적이 드러나는 것을 매우 조심했지만 주로 지인들이 스위스 비밀계좌를 관리해주는 프랑스 파리와 내연녀가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 그리고 가족이 있는 마카오 등 3곳을 자주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숨지기 전날 쿠알라룸푸르 모 호텔에서 지인, 내연녀와 파티를 즐겼다는 말도 들려온다.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내연녀를 끔찍이 아낀 김정남은 1년 중 3개월 이상 말레이시아에 머물렀고, 이를 눈치챈 암살 배후에 의해 결국 쿠알라룸푸르에서 최후를 맞았다.
김정남은 2001년 일본입국 억류사태때 “도쿄 디즈니랜드를 가보고 싶었다”고 진술했으나 이전에도 도쿄 아카사카(赤坂) 유흥가의 단골손님이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2003년 오스트리아에서 목격된 그는 이듬해 북측의 암살 시도가 있었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이후 2007년부터 중국 영향권인 마카오에서 가족과 머물고 있음이 알려졌다. 김정일 건강이상설이 제기된 2008년 7월만해도 프랑스 의사를 데리고 평양을 방문하는 등 고국을 드나들 수 있었다. 국제미아로 전락한 것은 김정은이 실권을 잡으면서부터다.
특히 2008년 헝가리에 체류하던 김정남은 괴한에게 습격을 당해 헝가리 정부가 북한에 사건재발방지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낸 사실을 한국정부가 확인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15일 전했다. 당시 조선노동당에선 김정은의 친모 고영희를 찬양하는 ‘조선인민군 어머니운동’이 한창이었으며, 김정은은 부친 김정일이 이복동생 김평일 체코주재 북한대사를 견제하는 방식을 교훈으로 삼았다고 한다.
2010년 11월 모스크바에서 친모 성혜림 묘소를 다녀올 때쯤엔 프랑스와 태국, 베이징 등을 여행하며 신변을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 거주지인 마카오를 자주 비우며 동남아 각국을 전전했던 시기다. 이후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고 2년뒤 그의 뒤를 봐주던 장성택마저 처형되면서 생활이 곤궁해졌고, 마카오 호텔의 숙박비를 못내 쫓겨났다는 얘기도 흘러 나왔다.
결국 2012년 싱가포르로 거처를 옮긴다. 2014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이탈리아 식당에서 여성과 함께한 장면이 목격됐으며, 파리의 고급호텔에서 30대 여성, 아들과 있는 장면도 노출됐다. 이 무렵이 가장 최근 행적이지만 그의 운명은 긴박한 국면에 접어든 상태였다. 산케이(産經)신문은 북한소식통을 인용 “김정은 정권출범 직후인 2012년 ‘장소와 수단을 가리지 말고 김정남을 제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며 “당시 중국에 머물던 북한공작원들에게 암살용 독침이 지급됐다”고 전했다.
생전에 김정남을 자주 만났다는 말레이시아 거주 한인은 “불안하게 살지말고 남한으로 가라. 한국정부가 보호해준다고 했지만 씩 웃기만 했다”고 미국자유아시아방송(RFA)에 말했다. 이 한인은 “김정남이 (중국에서 보내준)경호원들과 함께 있었는데 이번에는 없었나보다”며 “함께 있던 중국계 싱가포르인 애인의 행방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남을 취재했던 아사히신문 미네무라 겐지(峯村健司) 기자는 “박식하고 온후했다. 식당 여종업원에게 농담을 건네는 장난기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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