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고.
불혹의 나이에 녹색테이블을 화려하게 접수한 여자탁구 김경아(40ㆍ대한항공)를 보는 탁구 인들의 심정은 복잡하다.
김경아는 14일 충북 단양에서 막을 내린 탁구 국가대표 상비군 선발전에서 19승5패를 기록하며 여자부 전체 3위로 14명의 상비군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오는 4월 중국 우시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 5월 독일 도르트문트 세계선수권에도 출전한다. 대한탁구협회는 이번 선발전 남녀 각 1~4위와 협회 추천 1명 등 5명을 대회에 파견할 예정이다.
김경아의 대표 발탁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단식 동메달,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여자단체 동메달을 땄고 2010년 9월에는 세계랭킹 4위까지 오른 여자탁구의 간판이다. 커트를 앞세워 상대 공격을 절묘하게 받아내는 플레이로 ‘깎신’이라 불리며 큰 사랑을 받았다. 2012년 12월 태극마크를 반납하고 은퇴했다가 두 아이를 낳고 2015년 말 다시 돌아왔다. 현정화(48) 탁구협회 부회장은 “김경아의 체력을 걱정했는데 문제없더라. 전성기 시절의 80% 이상 기량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김경아는 현역 유니폼을 다시 입은 뒤 국내 대회에서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해 ‘한 물 갔다. 다시 은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이후 독하게 마음먹고 이번 선발전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 여자 탁구가 처한 현실을 보면 김경아의 선전이 마냥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뒤집어 말하면 여자간판 선수들이 김경아의 수비를 뚫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현 부회장은 “우리 선수들 공격력이 약했다. 김경아 말고 또 다른 수비 전형인 서효원(30ㆍ렛츠런파크)도 이번 선발전에서 공격수들을 제치고 4위를 했다는 건 한 번쯤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고 지적했다.
여자 선수들의 맥이 끊긴 원인 중 하나로 당예서(36)-석하정(32)-전지희(25ㆍ포스코에너지)-최효주(19ㆍ삼성생명) 등 중국에서 귀화해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이 많아져 토종 선수들의 설 자리가 좁아진 탓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 부회장은 “꼭 귀화선수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토종 선수들이 대표팀의 간판이 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고 인정했다.
사실 중국 출신 귀화 선수들이 대표 간판을 차지한 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추세가 된 지 오래다. 이에 국제탁구연맹(ITTF)은 귀화 선수들의 국제 대회 참가 규제를 계속 강화하고 있다. 현 부회장은 “우리도 자연스럽게 하루 빨리 토종 에이스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탁구신동이라 불리는 신유빈(13) 같은 선수들이 치고 올라와 선배들과 대등하게 경쟁하고 또 제2의 신유빈을 키워낼 수 있도록 중장기 발전 계획을 마련 중에 있다”고 밝혔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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