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차단, 반란 세력 불씨 제거
中 “김정남은 김정은 대체재” 옹립 시도
북한 소환 명령 거부에 맞불 해석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46)이 피살된 것은 북한이 훗날의 화근을 싹부터 자르려는 의도로 추정된다.
김정남은 2001년 위조 여권을 갖고 일본에 입국하려다 적발된 이후 권력에서 밀려나 마카오와 중국, 동남아 등지를 옮겨가며 낭인 생활을 했다. 특히 2013년 북한 내 후견세력인 장성택이 처형 당한 이후에는 완전히 힘이 빠져 북한 내 정치적 기반을 사실상 상실한 상태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존 당시 후계자로 유력시됐지만,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이를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핵ㆍ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면서 중국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자, 중국이 김정남을 관리하며 김정은의 대체재로 옹립할 것이라는 설이 끊이지 않았다. 장성택이 처형 당한 이유도 중국과 모의해 김정남 옹립을 시도했기 때문이며, 장성택의 잔당 세력이 김정남을 축으로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다는 소문도 지속됐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14일 “김정은은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장남으로서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인데다 중국의 비호를 받는 김정남을 제거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올해 집권 6년 차를 맞았지만 강도 높은 대북 제재로 안팎의 압박을 받고 있는 김정은으로서는 이복형 김정남이 가장 성가시고 껄끄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김정남은 과거 회고록에서 “김정은은 개혁ㆍ개방을 해도 망하고, 안 해도 망한다”며 노골적으로 북한 체제를 비판했다. 정부 소식통은 “김정남의 존재 자체를 없애 정변의 불씨를 원천 차단하고 잠재적인 반란세력을 뿌리 뽑으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살해가 김정남의 해외 망명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남이 한국이나 미국으로 망명할 경우 김정은 체제의 실상과 내부의 고급정보가 외부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김정은의 불안정한 리더십에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특히 태영호 전 주영북한공사가 지난해 말 한국으로 망명한 이후 연일 김정은을 겨냥해 반기를 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북한 최고 엘리트의 망명을 두고 볼 수는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남이 북한으로 돌아오라는 김정은의 소환명령을 거부하고 버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권부에서 밀려난 이후 자유분방한 삶을 살며 이것저것 사업에 손을 댔지만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버지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에서의 정기적인 자금 지원이 끊겼지만, 아들 한솔 군이 해외에 체류 중인데다 이미 마련해 놓은 비자금이 남아있어 신변의 안전을 위협받을 수 있는 북한으로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 김정은의 직접 지시가 아니라 측근 세력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충성도를 입증하기 위해 김정남을 살해하는 무리수를 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은은 2인자 그룹을 번갈아 가며 숙청한 반면, 형 정철과 여동생 여정은 당장 제거하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다만 김정남 역시 백두혈통에 속하는 만큼, 김정은의 직접 지시나 동의 없이 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정남이 피살되는 과정에는 북한의 정찰총국이 직접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요인 암살임무를 수행하는 정찰총국은 지속적으로 김정남을 감시해왔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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