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성 질환탓 의사소통 힘든데
“윤병세 장관이 의사 왜곡” 비판
위로금 받은 나머지 한 명도
“죄책감 든다” 주변에 심정 토로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에 반대해 온 ‘나눔의 집’ 소속 할머니 5명이 정말 자발적으로 일본 측의 위로금 1억원을 수령한 것일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정부가 위안부 합의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할머니들의 의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윤 장관은 “한일 위안부 합의는 어느 정부도 못 이룬 성과”라며 “위안부 할머니 가운데 합의에 반대하는 단체(‘나눔의 집’) 소속 5명도 자발적으로 화해ㆍ치유재단으로부터 위로금을 수령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나눔의 집에 따르면 위로금을 받은 할머니 5명 중 4명은 치매와 중풍 등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어 일상 생활은 물론 의사 소통이 어렵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위로금을 받은 4명 가족들이 동의서 작성을 위해 할머니들을 시설 밖으로 모셔 가 받은 경우인데, 할머니들의 온전한 의사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자가 4명 중 2명의 할머니와 직접 대화를 시도해 본 결과, 실제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5명 중 나머지 1명인 A할머니도 위로금을 받은 후 “죄책감이 든다”고 나눔의 집 관계자들에게 토로했다. A할머니의 양아들 유모(57)씨는 “할머니가 위로금을 받는 결정을 할 때까지 많은 갈등이 있었고 위로금 지급을 거부하는 할머니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괴로워하는데도 적극적인 인물로만 홍보가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 나눔의 집에는 10명의 피해 할머니가 생활하고 있다. 이옥선(90) 할머니는 “돈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며 할머니들을 분열시키지 말라”며 “위안부 문제는 할머니들이 모두 죽고 없어도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 해결해야 할 역사적인 과제”라고 주장했다.
원종선 나눔의 집 간호사는 “10년 전만 해도 할머니들이 자신의 생각을 얘기할 수 있을 만큼은 건강했지만 지금은 밥도 스스로 먹기 힘들 정도로 연로하시다”며 “고령과 건강 악화로 판단 능력이 부족해진 노인들에게는 같은 내용이라도 여러 번 설명해 이해와 판단을 도와야 하는데 이런 과정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허광무 화해ㆍ치유재단 사무처장은 “피해자 스스로 의사를 밝힌 경우에만 위로금을 지급했다”며 강압은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위로금 지급 완료가 곧 한일 위안부 합의의 정당성을 확보해 주는 것처럼 표현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 피해자 가족들이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고(故) 박옥련 할머니의 딸로 나눔의 집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임모(60)씨는 “위로금을 거부하는 사람도 마음이 불편하고 받는 사람도 불편하도록 밀어붙이는 게 할머니들을 위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현재 생존 위안부 할머니는 39명으로 이들의 평균 나이는 90.2세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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