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철원군 동송읍 토교(土橋)저수지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된 민통선 안에 있다. 인간 출입이 통제된 반면, 먹을 것을 찾아 남쪽을 찾은 겨울 철새들에게는 더없이 안전한 낙원이다.
한국전쟁 후반, 백마고지 등 철의 삼각지를 중심으로 한 고지 쟁탈전에서 국군병사들의 희생으로 우리 땅이 된 철원은 북한 입장에서는 천추의 한이다. 김일성이 철원을 한국군에 내주고 3일 동안 통곡을 했다는 것에서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철원평야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1976년 완공된 토교저수지는 신철원 8경으로 지정되면서 지금은 물 공급과 함께 멸종 위기의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월동하는 철새도래지로 환영 받고 있다.
지난 주, 영하 16도 새벽에 찾은 저수지에는 수 없이 많은 두루미와 기러기 떼가 세찬 바람을 피해 호수에 웅크려 있었다. 잠시 후 동이 트기 시작하자 죽은 듯 앉아 있던 기러기들이 일제히 날개를 펴고 먹이를 찾아 비상한다. 소리에 놀란 잠꾸러기 두루미까지 뒤늦게 합세하자 철원 하늘은 일순 장관이 됐다.
흩어졌다 모여들기를 반복하기 수 차례, 철새들이 펼치는 황홀한 점묘화를 보노라니 겨우내 얼었던 몸과 마음도 온기가 차오른다.
한반도를 강타한 AI로 전국의 철새들이 푸대접을 받고 있지만 이곳 토교저수지에서 만큼은 그들이 맘 편히 쉴 수 있으면 좋겠다. 멀티미디어부 차장 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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