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주도로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외국계 투기자본이 국내 10대 대기업 가운데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6곳의 감사위원을 싹쓸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재계가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를 비롯해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 소송제 도입’ 등 상법 개정안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는 이유다.
한국경제연구원이 14일 내놓은 ‘감사위원 분리선출ㆍ집중투표제 도입 시 이사회 구성 주요 기업의 시뮬레이션’ 보고서에 따르면 감사위원 분리선출제가 도입될 경우 외국계 투자기관이 연합하면 매출액 상위 10위 기업(공기업ㆍ금융기관 제외) 중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기아차 SK이노베이션 현대모비스 등 6곳의 감사위원을 모두 선임할 수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현재 이건희 회장과 삼성생명, 삼성물산이 각각 3.48%, 7.76%, 4.17%의 지분을 갖고 있고 국민연금이 8.8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기업 총수와 국내 기관, 국내 전략적 투자자의 지분이 총 29.74%인데 개정안 도입 후에는 이 회장 등의 의결권이 최대 3%로 제한되면서 전체 의결권이 17.48%로 줄어든다. 반면 외국 기관 투자자는 모두 3% 이하의 지분을 갖고 있어 현재 차지하고 있는 지분 28.67%를 법 개정 후에도 유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외국 투자자들이 뜻을 모으면 선호하는 감사위원 모두를 선임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상법에서는 전체 이사를 주주총회에서 일괄 선임하고 이들 중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별도로 선임하도록 하고 있는데, 개정안은 ‘일반 이사’와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따로 선임하고, 특히 감사위원 선임 때는 주주가 아무리 많은 주식을 갖고 있더라도 의결권을 최대 3%로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한경연은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뽑을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대신,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집중투표제도 외국 투자자들이 악용하기 쉽다고 경고했다. 집중투표제는 2명 이상의 이사를 뽑을 경우 주식 수에 선임 해야할 이사의 수를 곱한 것만큼 의결권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이사 3명을 선임한다면 1주당 3개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주식 100주를 발행한 회사에서 3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지금은 50주를 가진 1대 주주가 원하는 이사 3명을 모두 뽑을 수 있다. 하지만 법이 개정되면 20주를 가진 2대 주주가 60주의 의결권을 확보하게 되고 이를 한 후보에게 몰아주는 방식으로 자신이 선호하는 이사 1명을 선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신석훈 한경연 기업연구실장은 “국내 투자자와 외국 투자자가 극단적으로 나뉘어 연합하는 일이 흔치 않지만 개정안대로 라면 외국 투자 기관들이 기업에 영향력을 줄 만큼의 최소 지분만을 확보한 뒤 자기 사람을 이사회에 진출시켜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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