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청년 모하마드(27)는 작년 2월 14일 장미 100송이와 하얀 풍선, 목걸이를 여자친구 집에 선물로 보냈다. 그는 “‘밸런타인데이 선물’이라는 말은 불법이라 못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며 “사우디에서도 얼마든지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13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엄격한 수니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밸런타인데이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매년 이맘때면 사랑을 소재로 한 각종 상품들의 판매가 급증한다는 것이다. 당국이 밸런타인데이를 “기독교 성인의 순교를 기리는 날”이라며 금지시켰음에도 이미 연인들 사이에서는 꼭 챙겨야 하는 기념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모양새다.
하지만 사우디에서 밸런타인데이를 챙기는 데에는 여전히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 우선 종교경찰(무타와)의 단속망을 피해 선물을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다. WSJ은 매년 밸런타인데이 전후로 ‘붉은색 상품 금지령’이 떨어지는 탓에 많은 사우디인들이 수 주 전 미리 쇼핑을 마쳐놓는다고 전했다. 수도 리야드의 한 상인은 “14일에는 빨간 물건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갈색 페인트로 칠한 하트 모양 장식품에 사랑의 메시지를 새겨주고 있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사우디 꽃 시장에서도 밸런타인데이는 포기할 수 없는 대목이다. 보도에 따르면 평소 장미 한 송이의 가격은 10리알(3,000원)이지만 밸런타인데이가 가까워지면 15리알(4,500원)까지 치솟는다. 판매자와 손님 모두 상대적으로 안전한 배달서비스를 선호하기는 하지만 보도에 따르면 몇몇 플로리스트들은 “14일에도 매장에 붉은 장미를 숨겨놓고 팔 것”이라고 과감한 계획을 밝혔다.
엄격한 남녀분리를 고수하는 사우디에서는 연인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일 역시 쉽지 않은 관문이다. 리야드 쇼핑몰에서 소품점을 운영하는 래리는 WSJ에 “최근 들어 구매한 선물을 가게에 두고 나가는 손님이 늘었다”고 말했다. 연인 중 한 사람이 가게에서 선물을 산 뒤 사랑고백 메시지와 함께 포장해놓고 나가면 이어서 상대가 들어와 이를 가져가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의미이다.
한편 WSJ은 엄격한 이슬람 율법으로 시민들의 일상생활까지 옥죄던 사우디 사회에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무타와의 권한이 대폭 축소되고 여성의 사회 진출도 확대되면서다. 래리 역시 “지난 밸런타인데이에는 무타와가 가게에 들이닥쳐 하트모양 상품을 모두 치우라고 했다”며 “하지만 더 많은 상품을 들여놓은 올해는 아직까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유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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