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요약하자면 ‘단순 노동하면서 고액 연봉을 받아 챙기는 게 문제’다. 한국 제조업 문제를 둘러싼 여러 논란을 떠나, 서문에다 “국가, 기업, 국민 모두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합심 외엔 방법이 없다”고 써놓고 합심의 한 축이랄 수 있는 노동자들을 이리 몰아붙이면, 합심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14일 서울 인사동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회관 2층 회의실에서 열린 ‘가보지 않은 길’(나남)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오히려 노조 같은 곳의 공격을 기다린다”고 맞받아쳤다.
‘가보지 않은 길’은 일종의 현장 보고서다. 지난해 1월부터 현대차 국내외 공장을 찾아 현장을 확인하고 현대자동차(현대차) 관련 임직원 50여명을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4차 산업혁명 얘기가 떠들썩한 가운데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더듬어보기 위해서다. 송 교수는 “모두가 대선과 탄핵 얘기만 하는데, 속된 말로 ‘그러면 소는 누가 키우냐’는 얘길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송 교수가 현대차를 대상으로 삼은 건 한국 제조업의 성공과 위기가 응축된 사례라 여겨서다. 그는 현대차 모델을 ‘기술주도적 포디즘’이라 규정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기술과 단순노동이 결합된 형태다. 이 모델이 만들어진 시기는 현대차가 정리해고를 강행하면서 노조가 전투적으로 변했던 외환위기 때였다.
정리해고 충격을 받은 노동자들은 ‘많은 임금, 짧은 노동시간, 긴 정년’이라는 자기 이익만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했다. 이를 어쩌지 못한 경영 쪽에서는 최첨단 기술을 가장 단순한 노동과 결합시켰다. 단순 노동임에도 고임금이 가능한 구조는 이렇게 탄생했다. 고임금 구조를 떠받치기 위해서는 주변 약자들이 필요하다. 송 교수는 “울산 공장에 가면 갖가지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있어 울산 공장의 생산성이 가장 낮다”며 “그럼에도 고임금을 받을 수 있는 건 외국 공장의 높은 생산성을 편취하고 국내 작은 공장들의 생산성에 편승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경영, 노동 양측의 실수와 오류로 배태된 이 모델로 현대차가 지금까지 어느 정도 버텨낸 것은 맞다”며 “그러나 인공지능(AI) 등으로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변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고 말했다.
대안으로 우수 기술인력에게 이사급 대우를 해주는 기능장 제도의 부활 같은, 월급과 정년 외 별개의 목표를 제시하는 조직 개편 방안을 제안했다. 송 교수는 또 ‘각성’을 강조했다. 그는 “현대차 노동자들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만 유통되는 정의’에 집착할 게 아니라 외부 시민들과 접촉해 그들이 현대차와 현대차 노동자들을 어떻게 보는지 빨리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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