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수강을 취소한 학생이 수강생의 30%를 넘었는데 왜 내가 C학점을 받아야 하지요?” 일전에 필자가 수강생으로부터 받았던 항의 메일의 한 대목이다.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난 학기부턴 학점 관련 민원성 메일이 거의 사라졌다. 하여 이 항의가 필자가 접한 항의 메일 가운데 ‘백미’가 될 듯싶다.
필자가 속한 대학에서는 상대평가를 해야 하고 수강생의 70%까지 A, B학점을 줄 수 있다. 수강을 확정한 학생 중 30%가 수강을 취소하면 논리적으론 남은 학생 모두가 A, B학점을 받을 수도 있다. 메일을 보낸 학생은 수강 포기자 수가 3할이 넘자, 이 점에 착안하여 적어도 B학점은 받으리라고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학점은 수강생 자신의 성취를 바탕으로 매겨진다. 남의 행위를 바탕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평가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수업에서 성취한 바를 비교하여 평가하는 방식이기에, 상대가 성취한 바가 없으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곧 수강을 취소하면 비교할 근거가 사라지기에 수강 취소 학생 수가 학점 취득의 근거가 될 수 없게 된다.
가끔은 주위로부터 이런 푸념도 듣곤 한다. 수업에 지각한 학생이 더 늦게 들어온 학생과 자기를 동일하게 감점 처리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항의한다고 한다. 영락없이 맹자가 일갈한 “오십 보로 백 보를 비웃는다”는 꼴이다. 오십 보를 갔든 백 보를 갔든 둘 다 비겁하게 전쟁에서 도망친 것은 매일반이다. 그럼에도 본질은 생각지 않고 말단의 차이로 상대를 비난한다면 누가 더 꼴 보기 싫어지겠는가.
그래도 이런 모습들은 학점에 필요 이상으로 연연해하는 우리 대학의 ‘웃픈’ 현실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프닝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부문이 있다. 정관계나 재계, 언론계, 사법계 같이 권력이 집중되고 행사되어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이해관계에 구조적이고도 일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 그것이다. 가령 언론은 정론 생산 여부에 따라 존립의 정당성이 갖춰져야지 “우리는 저 언론사보다 ‘기레기’가 적다”는 사실이 존립의 정당성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재계나 사법계, 정관계도 마찬가지다. 남의 불법이나 패악, 몰상식 등이 자기 정당화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남의 행위 결과를 토대로 이익을 보려는 삶의 태도나 사고방식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이 불거진 이후 민주당과 야권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높아진 현상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과연 그들이 잘한 바를 근거로 지지율이 상승한 것인지, 정계가 ‘제로섬(zero-sum)’적으로 작동된 결과 상대의 잘못으로 인한 반사이익인지를 냉철하게 짚어봐야 한다. 만일 후자만이라면 소위 ‘한 방에 훅 갈’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졌음은 사필귀정일 것이다.
야권이 ‘박근혜-최순실’ 일당처럼 잘못했다는 말이 아니다. 국정 농단의 연루자들 모두가 그 정도에 따라 법적, 역사적으로 견책돼야 함도 물론이다. 다만 그들의 처벌이 지연된다고 하여 민주적 제가치가 온전히 구현되게끔 하는 노력을 안 해도 되는 건 결코 아니다. 시민으로부터 우리 사회의 개혁 의무를 위임받은 자들이 자기 이해관계를 앞세우느라 개혁을 등한시한다면, 그들 역시 견책과 청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 이후 국회를 통과한 ‘개혁 법안’은 한 건도 없다고 한다. 아니 그럴 마음이 있는지 자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개혁이란 절체절명의 과업이 대선과 개헌이라는 화두에 먹히고 말았다. 이렇게 앞뒤 분간을 못했음에도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개혁을 등한시한 잘못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개혁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기에 빠르면 빠를수록 그만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병환에 신음하는 병자에게 의사가 병원장 선거에서 승리한 다음에 치료를 시작하자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병원장은 고사하고 의사 면허 자체를 취소해야 마땅할 것이다.
지난 주말 강추위 속에서도 80만 시민이 촛불을 밝혔다. 촛불 민심은 그렇게 일관되게 적폐 청산과 불평등, 불공정한 사회구조의 근본적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매일같이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선전되고 있다. 그 공약들이 촛불민심이 요구하는 바와 무관할 수는 없다. 그런데 왜 대통령이 된 다음에나 개혁을 하겠다며 미루는지, 정녕 지금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단 말인지 참으로 답답해진다.
남의 살인이 내 도둑질을 정당화해주진 못한다. 남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 내가 자동적으로 선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치 예능’에 나와 공약 이행을 힘주어 약속하면 개혁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이는 자기기만일 뿐이다. 개혁은 못돼도 천리를 가야 하는 여정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을 때 착실하게 쌓아가야 한다. 익히 경험했듯이 기득권층이 호락호락한 적은 없었기에 더욱 그렇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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