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감사위 제도 놓고
재계 “기업 경영 위축될 것” 반발
선진국의 감사위 관련 제도는
美, 감사위원 맡는 사외이사 자격
경영진과 단 1% 연관성도 없어야
獨, 이사회 이원화로 강력한 감사
“단순 비교로 도입 여부 판단 문제”
최근 정치권과 재계가 ‘상법 개정안’의 핵심 조항 중 하나인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둘러싸고 연일 각을 세우고 있다. “투명 경영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야권의 주장에, 재계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법”이라는 논리로 첨예하게 맞선다. 결론부터 말하면 ‘어디에도 없는 건 사실’이지만, ‘선진국은 굳이 이런 제도가 필요 없을 만큼 내부통제가 엄격하다’는 현실을 함께 말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13일 재계 등에 따르면, 최근 국회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을 논의 중이다. 특히 재계는 이 가운데 감사위원과 일반 이사를 분리해 선임하고,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에 결사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재계의 핵심 반대 논리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가 세계적으로 도입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권이 세계에 유례 없는 규제를 도입해 기업 경영을 과도하게 위축시킨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재계의 주장과 달리 선진국에서는 상법개정의 ‘목적’(감사위원회 독립성 확보 및 지배주주의 전횡 감시)을 달성하기 위해 감사위원 분리선출보다 더 강력한 제도적 기틀을 이미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미국에서는 분식회계 사건인 ‘엔론 사태’ 이후 기업 이사회 내 감사위원회(사외이사)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규정은 없으나 감사위원을 맡는 사외이사의 자격요건이 우리보다 훨씬 까다롭다. 경영진과 경력, 학력, 금전관계 등에서 1%의 연관성도 지니면 안 된다. 일례로 2003년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은 소액주주들이 오라클(Oracle)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회사 감사위원회는 공평한 감사활동을 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래리 앨리슨 회장 등 오라클 이사진이 스탠포드 대학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한 만큼 감사위원회에 참여한 이 대학 교수 2명이 제대로 감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감사위원의 사후책임도 엄중하다. 정재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은 “감사위원이 적절한 내부통제를 취하지 않으면 기관투자자나 소액주주로부터 손해배상소송 등까지 당할 수 있다”며 “이런 환경을 갖춘 미국에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도 그 제도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독일은 이사회 이원화를 통해 강력한 감사기능을 보장한다. 독일 기업의 이사회는 감독이사회와 경영이사회의 이중 구조다. 우리나라의 감사위원회 역할을 포함하는 감독이사회는 주총에서 선출한 주주이사와 노조에서 추천한 노동이사가 같은 비율로 참여하며, 노동이사는 기업 전반의 의사결정을 견제하고 감시한다. 안택식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는 “독일 시스템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보다 더 강력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본은 비교 사례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일반 이사와 감사위원을 분리해 선출하지는 않으며, 감사위원 선출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규정도 없다. 이에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지배구조 측면에서 일본은 선진국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에 대한 찬반을 떠나 전문가들은 지배구조 측면에서 국가별로 ‘증상’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단순 비교로 ‘처방’의 정당성까지 부정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재계는 선진국에서 감사위원회 독립성 확보 목적을 위해 어떤 수단을 활용하고 있는지 따져보기 보다, 단순히 제도 도입여부를 비교하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경서 교수는 “재계의 주장을 뒤집어 보면, 2~3% 지분을 지닌 총수 일가가 계열사 지분을 통해 ‘1주당 1표’가 아닌 ‘1주당 10~15표’를 행사하며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국가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꼬집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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