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2.14
‘블루 마블(부루마불ㆍBlue Marble)’은 1982년 한 국내업체가 출시한 보드게임의 이름으로 유명하지만, 정관사 ‘The’를 붙이면 지구를 지칭하는 표현이 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유인 달 탐사선 아폴로 17호의 승무원이 1972년 12월 7일 약 4만5,000km 떨어진 곳에서 촬영한 지구를, 혹은 그 사진을 그렇게 불러왔다. 서쪽으로 지중해와 대서양이 담기고 태평양이 동쪽 끝까지 이어진 사진 속 둥근 지구는 만년설의 남극과 북극해, 시베리아와 인도의 고동색 땅과 구름들이 얼룩처럼 담겨 푸른 대리석을 연상케 했다. 사진은 지구의 ‘특별함’의 과시하며 역사상 가장 많이 복제된 작품 중 하나가 됐다.
1990년의 발렌타인 데이였던 2월 14일, 나사의 태양계 무인 탐사선 보이저 1호는 또 하나의 유명한 지구 사진을 인류에게 전송했다. 검은 마분지처럼 어둡고 광막한 바탕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태양광과 그 안에 구멍처럼 찍힌 작고 희미한 점 하나. 렌즈와 피사체 사이에는 61억 km 두께의 우주가 가로놓여 있었다. 그 사진 속 지구를 나사는, 더 엄밀히 말하자면 보이저 프로젝트의 화상팀에 있던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은 94년 같은 제목의 책에서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이라 불렀다. 그는 “지구는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고 썼다.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세이건의 85년 SF소설 ‘콘택트(Contact, 영화는 97년 개봉)’의 주된 정조도 아득한 그리움이었다. 주인공 엘리(조디 포스터 분)는 “이 우주에 지적인 존재가 우리밖에 없다면 엄청난 공간 낭비일 것”이라 말했다. 테드 창 원작(‘당신 인생의 이야기’) 영화 ‘컨택트(Contact, 원제는 Arrival)’의 천체물리학자 제레미(이안 분)는 “나는 평생 우주를 쳐다보며 살았지만, 외계생명체를 만난 것보다 더 큰 감격은 당신을 만난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들이 깃들인 ‘창백한 푸른 점’을 본 세상의 연인들은 그 왜소함과 외로움으로 하여, 더 간절한 발렌타인 데이의 밤을 보냈을 것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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