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를 3개월 앞두고 군에서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다가 의무대 실수로 몸에 수은이 주입된 남성에게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4단독 류종명 판사는 김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김씨에게 2,1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13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 2004년 9월 소속 부대의 독감 예방접종 조치에 따라 의무대에서 주사를 맞았다. 그 후 오른쪽 팔에 심한 통증을 느껴 방사선 검사를 받았더니 이물질이 발견됐고 같은 해 말 ‘오른쪽 어깨 이물 주입상태’라는 병명으로 공무상병인증서를 받은 뒤 만기 제대했다.
제대 후에도 통증이 지속돼 병원에 입원해 검사를 받은 결과 혈중 수은 농도가 120(체내 수은농도 안전기준치는 5 미만)으로 측정됐다. 조직검사 결과에서도 이물질이 수은으로 보인다는 진단이 나왔다. 자비로 수술을 통해 수은 덩어리를 빼낸 김씨는 2004년쯤 의무대에서 수은이 들어 있는 체온계와 혈압계를 썼고, 그 무렵 체온계가 깨지는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는 점을 기억해냈다. 그때부터 국가를 상대로 11년 동안 길고 긴 소송이 시작됐다.
김씨는 2006년 “국가가 군부대 내 수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예방접종 때 다량의 수은이 주입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김씨는 그러나 “국가배상법상 단서조항 때문에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1심에서 패소했다. 이 조항은 ‘이중배상금지원칙’을 말하는 것으로, 군인이나 유족이 법령에서 정한 상이연금 등 보상금을 받으면 국가에 별도로 민법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다. 이에 김씨는 국가유공자로 등록해 국가유공자법에 따른 보상금을 받기 위해 수원보훈지청에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다. “독감예방접종 과정에서 수은이 주입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 당한 뒤 소송 끝에 2011년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보훈지청의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김씨는 그러나 같은 해 상이등급 신체 검사에서 기준미달로 또다시 국가유공자비해당 통보를 받았다.
김씨는 그러자 국가를 상대로 다시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번에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류 판사는 “김씨가 제대 후 장래를 설계할 시간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노력과 비용으로 군의 과실 때문에 생긴 부상을 치료 받아야 했다”며 “수술 흔적이 평생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점에 비춰 의무대가 수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군 복무 기간에 군의 과실로 상해를 입은 김씨에 대해 시효소멸을 주장해 온 국가에 대해서는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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