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를 고소합니다.”
지난해 12월 12일 한 재경(在京)지검에 1장의 고소장이 접수됐다. 암호문에 가까운 해독 불가 글씨체, 육하원칙과는 거리가 먼 횡설수설 고소 내용 등 누가 봐도 정상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조잡한 고소장. 검찰 쪽에서 어렵게 해독한 내용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내정을 간섭하고 있으며, 미국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남용해 고소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누가 봐도 장난에 가까운, 조사할 가치도 없는 고소”라고 말했다.
‘장난에 가깝다’는 트럼프 고소 사건이 최근 검·경 간 신경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경찰은 “일 떠넘기기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반발하는 반면, 검찰은 “절차에 따른 것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갈등은 접수된 고소 사건이 해당 검찰청 형사부로 배당이 되고, 사건번호까지 부여된 정식 사건이 되면서 시작됐다. 고소 경위가 장난이든 아니든, 당연히 누군가는 조사를 통해 마침표를 찍어야 할 상황. 검찰은 “2달의 기일을 줄 테니, 그 시간 안에 수사를 하라”고 관할 경찰서로 사건을 내려 보냈다. 검찰 관계자는 “통상적인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현행법상 검찰이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번 건 같은 경우 법을 핑계로 일 떠넘기기, 즉 명백한 수사지휘권 남용이라는 반발이다. 정식 사건으로 접수가 되더라도 검찰이 자체 조사를 통해 무혐의 등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게 가능하다는 게 경찰 주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결국 본인들은 바쁘니까, 한가한 경찰이 사건 조사해서 결과를 보고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누가 봐도 뻔한 결론이 내려지는 사건을 굳이 경찰보고 하라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해당 사건을 최근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12일 밝혔다. 두 달 가까이 경찰이 한 일은 몇 차례에 걸친 고소인 조사, 검찰에 보낼 수사보고서 작성 등이 다였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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