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일터서 범죄 경력 없어도 연행
‘300만명 추방’ 공약 신호탄 우려
제2 反이민 행정명령도 곧 발표
이민자 사회에 공포·불만 들끓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 행정명령 효력은 일시 중단됐으나 이번엔 불법체류자들이 미 전역에서 무더기로 연행되면서 이민자 사회가 다시 불안에 떨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체류자 추방 공약을 현실화하는 동시에 사법부를 우회할 새로운 반이민 행정명령을 예고함에 따라 미국 사회를 들끓게 한 이민자 갈등이 재차 격화되고 있다.
미 CNN방송 등은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지난주 미국 전역에서 불법체류자를 겨냥한 대규모 단속을 실시해 수백 명을 체포했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ICE의 단속은 ‘불법체류자 300만명 추방’을 공약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실시한 중앙 정부 차원의 단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지난달 25일 불법 체류자를 추방하지 않는 보호 도시(sanctuary city)에 연방정부 지원금을 끊겠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표한 바 있어, 이번 단속 작전이 ‘대규모 추방작전의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다.
ICE의 단속 작전은 규모 면에서 이민자 사회 내 공포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ICE 집행관들은 6~10일 닷새간 캘리포니아, 조지아, 뉴욕 등 12개 주에서 불법체류자의 집과 일터를 급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체포자 수만 560여명이다. 범죄자뿐 아니라 범죄 경력이 없는 불법체류자도 포함됐다.
이민 당국은 단속을 둘러싼 각종 우려에 대해 정기적인 작전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ICE 로스앤젤레스 지부담당자인 데이비드 마틴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시행되기 이전부터 수주 간 계획해 온 작전”이라며 “1년에 두세 차례 시행하는 단속”이라고 설명했다. 마틴은 또한 “이번 주 체포한 160명 중 75%가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이고, 나머지는 경범죄자 혹은 불법체류자”라고 설명했다. 국토안보부 측도 “외국인을 무차별적으로 단속하는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워싱턴 정가와 이민자 단체들은 단속 움직임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루 코레아(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10일 ICE에 서한을 보내 “단속 움직임은 공포를 키우고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며 우선 체포대상 등 10개 질문에 대한 답을 요청했다. 미국 인권단체 시민자유연맹(ACLU)은 이민자들의 도움 요청에 트위터를 통해 ‘ICE 직원 방문 시 대응 방법’을 홍보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2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예고하고 나선 것도 불법체류자 배척 움직임을 지속할 것이란 의혹에 힘을 싣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플로리다 주 웨스트팜비치로 이동 중 에어포스원에서 이뤄진 인터뷰를 통해 “우리에겐 새로운 행정명령을 포함해 다른 많은 옵션이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이민 행정명령을 둘러싼 법정 다툼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면서도 “국가안보를 위해 서둘러야 한다”고 말해 새 행정명령을 발동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새로운 이민 행정명령이 발표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행정명령 부활을 위한 법적 공방을 멈출 가능성도 있다. 시애틀 연방지방법원은 지난 3일 이슬람권 7개국 국민의 입국 금지 등에 관한 반이민 행정명령의 시행 중단을 결정했으며, 샌프란시스코 제9 연방항소법원도 이어 행정명령의 효력 재개를 요청한 법무부 항고를 기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각 선고 직후 “법정에서 보자”고 대법원 재항고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대법원에서 승산이 불투명해지자 신규 행정명령을 통해 법원 결정을 우회하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다만 라인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사법시스템을 포함한 모든 선택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향후 행보를 확정 짓기는 어려운 상태다. 새 이민 행정명령은 오는 13일 또는 14일 발표될 것으로 보이며 내용 면에서 기존 명령과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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