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 행적ㆍ덕성 등 조사
교황청이 검토 후 최종 선정 결정
다산 정약용에게 복음을 전한 이벽, 한국전쟁 직전 평양교구장이었던 홍용호 주교 등 214명에 대한 시복(諡福) 심사가 시작된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 특별위원회(위원장 유흥식 주교)는 12일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와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에 대한 시복 추진 예비심사 법정을 22일 연다”고 밝혔다.
세례명이 ‘세례자 요한’인 이벽(1754~1785)은 중국에서 세례 받고 온 이승훈 베드로로부터 1784년 세례를 받았다. 이는 조선 땅에 있었던 최초의 세례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벽은 이후 정약용ㆍ약전 형제, 권철신ㆍ일신 형제 등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등 한국천주교회의 중심인물이 됐다. 그러다 1785년 우연찮은 일로 발생한 ‘을사추조’ 사건에 휘말렸다.
당시 형조 수사관들이 명례방(明禮坊ㆍ현재 명동) 일대를 지나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의심해 덮쳤는데, 이게 천주교인들의 모임이었다. 모임장소를 제공한 중인 출신 김범우 토마스는 유배 중에 죽었다. 양반가 자제라는 이유로 석방된 이벽은 아버지의 배교 압박을 견디다 못해 병을 얻어 죽었다. 을사추조 사건은 최초의 천주교 박해 사건이자, 이후 이어지는 천주교 박해사건의 시초로 꼽힌다.
홍용호 주교는 6대 평양교구장으로 있던 1949년 행방불명됐다. 교황청은 그간 홍 주교의 사망을 인정치 않다가 2013년 사망을 인정하면서 시복 추진 가능성이 열렸다. 특히 홍 주교와 함께 시복 대상자에 오르는 80명은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처음 전파되던 조선시대가 아니라, 근현대 시기의 인물들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들 대부분은 1949년, 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해 공산당의 탄압 때문에 죽거나 납치당한 이들이다. 한국천주교회 관계자는 “이번 시복 추진은 조선왕조 시대를 넘어서, 근현대로까지 시복시성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심사법정은 이들의 행적을 조사하고 덕성을 따져 교황청에 보낼 약전(略傳)을 만든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교황청이 관련 자료를 검토, 최종 선정여부를 가린다. 시복시성이란 교회가 공식적으로 복자(福者)와 성인(聖人)을 선포하는 것을 말한다. 성인은 전세계 가톨릭교회가, 복자는 해당 지역 가톨릭 교회가 모시게 된다. 시복시성 진행과정은 엄격한 증거조사를 거친다는 점에서 재판 형식을 취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1925년 79위가, 1968년에는 24위가 복자로 선포됐다. 이들은 다시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성식을 치러 성인품에 올랐다. 또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124위를 복자로 선포했다. 이로써 국내에는 103명의 성인과, 124명이 복자가 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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