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김소월 등 시집서 시작한
초판본 복각 열풍이 산문집까지
세로쓰기ㆍ겉표지 등 옛 느낌 살려
김승옥ㆍ전영택ㆍ이상 책 다시 출간
아날로그 감수성ㆍ수집 욕구 자극
“다른 장르 복각에도 눈 돌려야”
‘무진기행’의 김승옥(76), ‘화수분’의 전영택(1894∼1968)이 1960∼1970년대 엮은 작품집이 옛 모습 그대로 복각됐다. 1950년대 출간된 ‘이상 전집’(고대문학회 편집)도 이르면 3월 복각본으로 나온다. 지난해 김소월 윤동주 백석 시집에서 불기 시작한 초판본 복각 열풍이 산문집으로 옮긴 모양새다.
산문집 복각 열풍의 첫 주자는 40년 만에 다시 펴낸 김승옥의 유일한 수필집 ‘뜬 세상에 살기에’다. 출판사 예담이 초판본의 세로쓰기까지 그대로 옮겼고 중질 만화지를 사용해 옛 느낌을 되살렸다. 뒷표지에는 사진작가 강운구가 찍은 작가의 젊은 시절 사진을 실었다. 정지연 예담 편집자는 “김승옥은 여전히 우리 문단에 유효한 작가이고 ‘뜬 세상에…’는 그의 세계관을 내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일한 산문집이다. 출간 40년을 맞아 초판본 복각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절판 후 작가조차 초판본을 갖고 있지 않아 출판사는 소장자를 수소문했고, 중고서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의 윤성근 대표의 기증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글 순서를 재배열하고 가로쓰기로 편집한 개정판도 함께 나왔다. 정 편집자는 “초판 3,000부를 찍었는데 예약판매로 500부가 나갔을 만큼 반응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출판사 늘봄은 1965년 어문각이 발행한 판본을 되살린 ‘전영택 창작선집’을 펴냈다. ‘화수분’과 ‘천치냐 천재냐’ 등 작가가 직접 고른 단편소설 29편을 실은 이 책은 작가의 선집 중 가장 많은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전영택은 1919년 김동인 주요한 등과 함께 문예지 ‘창조’를 창간한 한국 현대소설사의 산증인이지만 작품 활동은 과작(寡作)이었다. 복각본은 세로쓰기를 가로쓰기로 바꾸고 오늘날에 맞춰 일부 맞춤법 교정을 했다. 겉·속 표지 장정까지 모두 복원했지만 내지 활자체까지 디지털 영상으로 찍어 고스란히 옮긴 복각본은 아니다. 겉표지는 작가의 큰아들인 조각가 전상범, 속표지는 둘째 아들인 서양화가 전상수의 작품이다.
지난해 이인직의 ‘혈의 누’, 최서해의 ‘홍염’, 이효석의 ‘노령근해’ 등 근대 소설 초판본을 줄줄이 다시 펴냈던 출판사 소와다리는 ‘이상전집’ 복간본을 이르면 3월 출간한다. 이전 복간본들과 마찬가지로 초판본의 장정과 활자를 충실히 복원해 당대 감성을 재현하되, 한자 없는 국문으로 구성한다.
근현대 유명 작가들의 대표작 초판본이 다시 선보이는 건 김소월 윤동주 시집 초판ㆍ증보판 복각이 돌풍을 일으킨 데 따른 것이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증보판, 김소월의 ‘진달래 꽃’ 초판 복간은 당시 대형 서점 시집분야 1,2위를 기록하며 누적판매 20만, 10만부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
2015년 11월 소와다리는 김소월 시인의 1925년 ‘진달래꽃’ 초판본을 복원했다. 한 달 뒤 이 시집의 실제 초판본이 현대문학 경매 사상 최고가(1억3,500만원)에 낙찰된 뒤 관심이 커지며 베스트셀러로 진입했다. 탄력을 받은 출판사는 지난해 2월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백석의 ‘사슴’ 복각본을 내놨다. ‘하늘과…’는 1948년 발간된 초판본에 유족들이 보관했던 원고를 더해 시인의 10주기인 1955년 발간된 증보판을, ‘사슴’은 1936년 100부 한정판으로 출간됐던 초판본을 복각했다. 예약판매만 2,500부에 달했던 ‘사슴’은 5만부 이상 팔렸다.
김동근 소와다리 대표는 “‘어린왕자’나 ‘이상한나라의 앨리스’ 같은 해외 번역서 국내 초판을 내다가 한국 근현대작품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있어 출간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 출판사 주력 사업이 됐다”며 “고전이라 생명력이 길어서 줄지 않고 나간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젊은 세대가 이들 시집을 ‘팬시상품’으로 여기는 것 같다. 나만 갖고 있는 특별한 책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출판사가 복각본을 내는 기준은 시집과 산문집 통틀어 “내용과 함께 표지가 예쁜 책”이다.
근현대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한 편집방식이 아날로그적 감수성과 수집욕구를 자극한다는 해석이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디지털 시대에 책 구매자는 기본적으로 수집가라고 봐야 한다”며 “옛날 시집 표지 등이 수집 욕구를 자극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 소장는 “나쁘게 말하면 책의 물신화, 좋게 말하면 책 물성에 대한 소유의식이 드러난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정보화 도구가 디지털로 옮겨가면서 아날로그 욕구에 대한 부응이 복각본 유행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근현대 초판본 중에서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들이 주로 복각된다”며 “올해 발표 100주년을 맞는 이광수의 ‘무정’처럼 의미 있는 책의 복각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