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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전안법 사태의 숨겨진 의미

입력
2017.02.12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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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안법 사태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전안법’은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의 줄임말인데, 정식 약칭인 ‘전기생활용품안전법’보다 더 널리 쓰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안법이 종전의 전기용품안전관리법과 품질경영및공산품안전관리법을 합친 것에 불과하다고 항변하나, 그 해명자료에서 인터넷 판매사업자에게 제품 안전인증 정보를 게시할 의무를 새로 부과했다고 시인했듯이, 소상공인에게 새로운 부담을 지우거나 법적 의무의 준수를 새삼 강조한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부담 유무보다 더 근본적 문제점이 전안법 사태 밑에 숨겨져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 기업 관련 법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가 움직이는 방식이다.

정부가 공식 발표한 전안법의 제정 취지 중 하나는 “안정성 유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의 종류를 줄이고 주기를 늘려 제조자 등 사업자의 영업활동에 대한 부담을 경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부가 부담을 경감하고자 한 ‘사업주’란 누구를 의미할까? 이것은 전안법 사태 이후 어떤 기업이 사업을 그만두거나 사업장을 해외로 옮기겠다고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소규모 병행수입 업체와 구매대행 업체, 영세 의류제조업자 등 모두 작은 신생 기업이다. 전안법과 관련해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서 그 비용을 염려하는 목소리는 없다. 즉, 정부가 전안법 제정을 통해 부담을 줄이려 애쓴 ‘사업자’는 이미 시장에서 자기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인 것이다.

전안법이 통과될 당시의 19대 국회도 마찬가지다. 국회법에 따르면, 전안법과 같은 전부개정 법률안은 원칙적으로 공청회 또는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 그런데 19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공청회도 열지 않은 채 전안법에 대한 심의를 마쳤다. 전안법에 대한 법률안소위원회의 심의 역시 소위원장의 ‘기존의 업체가 여기에 그렇게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건 아니고 간명하게 법률을 정리한 것이다’라는 마무리 발언으로 끝맺었다. 국민의 민의를 따른다는 국회에서도, 그 민(民)에는 ‘기존’ 업체만이 있을 따름이지 자신의 작은 방 또는 좁은 사무실에서 창업한 청년은 없었다.

2월 6일자 한국일보 칼럼에서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세금 문제 등 불법적 요소가 있는 에어비앤비가 우리나라에서 시작됐더라도 성공할 수 있었을지 질문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법률 위반이라고 행정처분을 받고, 언론에서 두들겨 맞고, 이런 이유들 때문에 투자 자체를 아예 받지 못했을 것이다.”란 답을 내린 후 “왜 세상을 바꾸는 혁신 기업들이 압도적으로 실리콘밸리에만 모여 있는지 궁금하게 여겨본 일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했다. 그에 따르면, 혁신적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성장할 때까지 지원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전안법의 제정 이유에 나오는 ‘사업자’ 또는 국회에서 염려한 ‘기존의 업체’가 관료 또는 국회 관계자를 만날 때, 자신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없다. 그들은 시장질서, 효율, 안전 등 모두가 동의하는 가치를 앞에 세워둔 후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그 과정에서 국가가 소상공인과 혁신적 기업가의 의견을 함께 듣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산업 생태계는 기존 기업에 유리한 규칙으로만 구성된다.

만약 한국의 청년 기업가들이 재벌 대기업이 아닌 이상 성공할 수 없다고 좌절하거나 정부를 자신들의 보호자로 여기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어둡다. 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혁명 등과 같은 새로운 변화의 시대가 닥쳐올 때 그것을 발전의 기회로 삼는 것은 혁신적 기업이지 ‘기존의 업체’가 아니다.

세계적인 대기업과 재벌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은 행운이지만, 그들에게만 한국 경제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점을 정책 입안자들이 잊어서는 안 된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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