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인 11일 오후, 영하 6도 날씨에도 75만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여“박근혜 2월 탄핵”과 “특검 연장”을 외쳤다. 같은 시간 덕수궁 대한문 인근에서는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맞불집회가 대규모로 열렸다. 예상되는 3월 탄핵 심판결정을 앞두고, 양측간 세력 대결이 격렬해지는 모양새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오후 6시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된 ‘15차 범국민대회’에서 박 대통령 2월 내 탄핵과 황교안 총리 사퇴, 특검 연장을 촉구했다. 정치권에서 탄핵기각설이 흘러나오고, 보수세력의 맞불집회가 세를 늘려나가자 위기감을 느낀 촛불 시민들이 다시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15차 촛불집회 참석자는 주최측 추산 75만명으로 4일 열린 ‘14차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35만명의 2배 이상이다.
이 날 처음 촛불집회에 참석한다는 이윤정(43)씨는 “지금까지 촛불집회에 참석하지 않다가 뉴스에서 탄핵기각설이 나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왔다”며 “아이들에게도 올바른 역사가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탄핵기각설에 놀란 시민은 이윤정씨뿐 만이 아니었다. 집회에 홀로 참석한 이윤정(34)씨도 “지금까지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만 1,000만명이 넘는다”며 “설날 이후로 참석인원이 조금 줄어든다고 탄핵 기각 가능성이 점쳐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고 집회 참석 이유를 밝혔다.
세를 늘려나가는 보수세력 맞불집회에 ‘진짜 민심’을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는 시민들도 있다. 부인과 함께 나온 이정우(68)씨는 “태극기 집회가 동원으로 세를 불리고 있지만 촛불집회는 모두 자발적으로 나온다”며 “이게 진짜 대한민국 민심이지 대한문 앞에 모인 사람들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사람들 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고교 동창들과 함께 참석한 이영주(45)씨도 마찬가지 의견이었다. 이씨는 “최근 촛불집회 참석자 숫자만 보고 탄핵 열기가 줄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지난해부터 참석한 시민들을 생각하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옳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맞아 ‘퇴진 라이트벌룬’을 하늘에 띄우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비는 행사가 진행됐다. 이와 동시에 1월 14일 ‘12차 촛불집회’부터는 하지 않았던‘소등행사’도 다시 등장했다. 소등행사가 끝난 뒤 촛불 집회 참석자들은 청와대 100m앞까지 행진했다. 청와대 포위 행진이 끝난 뒤에는 곧바로 헌법재판소 100앞까지도 행진이 진행됐다. 헌법재판소로 향하는 행진 도중에는 박근혜 대통령 2월 탄핵‘소원지’를 태우기도 했다.
같은 시간 덕수궁 대한문과 서울시청 인근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맞불집회가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민중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주관으로 열렸다. 이들은 전국 12개 지역 회원들을 총동원해 촛불집회에 맞섰다. 탄기국 측은 대전ㆍ대구ㆍ부산 등 지역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상경해 이날 집회에 210만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매서운 날씨에도 노년과 장년층 참가자들은 두꺼운 겉옷과 장갑 등 방한용품으로 무장하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다. 이들은 ▦박 대통령 부당 탄핵 ▦국정농단 증거조작 ▦언론의 거짓 선동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아니라 ‘고영태와 그 일당의 사기 사건’이라는 주장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새누리당 윤상현 조원진 김진태 박대출 이우현 전희경 의원과 대권도전을 선언한 이인제 전 최고위원이 참가했다. 김 의원은 “요즘 분위기가 바뀌었다. 판이 이미 뒤집어졌다. 국정농단을 한 것은 최서원(취순실)이 아니라 고영태”라며 “여당 의원들은 이런 고영태를 의인이라고 치켜세우는데 이게 말이 되냐”고 말했다.
촛불집회 비하로 논란을 일으켰던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어둠의 자식들이고 밤이면 바퀴벌레처럼 나와서 굿판을 벌이고 있다”면서 “우리는 태양의 자식이다. 누가 이기겠는가.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우리가 이미 이겼다”고 외쳤다.
오후 4시 40분쯤에는 서울 중구 중앙일보사 앞에서 탄기국 회원 일부가 기자를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탄기국은 서울 중구 대한문에서 본집회를 마치고 행진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탄기국 소속 집회참가자 일부는 모 언론사 기자가 영상 촬영을 하자 “초상권을 침해 당했다”고 폭행했다. 이로 인해 해당 기자는 가벼운 부상을 당했다. 경찰은 “해당 기자가 폭행을 저지른 이들을 대상으로 고소장을 접수할 예정”이라며 “고소장이 접수되면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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