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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결단 기나긴 고통.. “내부제보자 안전망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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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결단 기나긴 고통.. “내부제보자 안전망 만들어야”

입력
2017.02.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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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익신고 관련한 법들 있지만

언론에 먼저 알리면 보호 못 받아

수사 제대로 될까 의심에 함구

#2

대리신고도 보호 대상 인정하고

보상금 등 생계 지원책 절실

1980년대 한국일보 편집국 칠판에 적혀 있었던 문화공보부 보도검열지침. 청와대 정무비서관실, 공보비서실, 안기부가 특정 사안에 대해 보도하지 말라거나 크게 보도하라는 지침을 만들어 문공부 홍보정책실을 통해 매일 각 언론사에 전달했다. 이런 정권의 언론 통제는 86년 김주언 당시 한국일보 기자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고, 87년 6월 항쟁 이후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0년대 한국일보 편집국 칠판에 적혀 있었던 문화공보부 보도검열지침. 청와대 정무비서관실, 공보비서실, 안기부가 특정 사안에 대해 보도하지 말라거나 크게 보도하라는 지침을 만들어 문공부 홍보정책실을 통해 매일 각 언론사에 전달했다. 이런 정권의 언론 통제는 86년 김주언 당시 한국일보 기자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고, 87년 6월 항쟁 이후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발자, 제보자가 패배자로 기억된다면 앞으로 누가 진실을 밝히려고 하겠어요. 이들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

내부고발자, 제보자, 증인 등이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감수하거나 떠안는 위험은 상당하다. 중대 범죄의 목격자, 피해자, 때론 연루자가 된 것도 황당한데 명백한 잘못을 말하기 위해 생계와 안전을 걸어야 하는 모순에 처한다. 전문가들은 내부고발의 막대한 공익을 감안하면 진술 계기가 무엇이건 이들에게 고통과 배제, 보복, 신변위협 대신 박수와 환대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과 의무라고 강조한다. 삶을 위협받지 않고도 진실을 증언하고, 증언했다면 이로 인해 보복당하지 않게 하고, 발생한 피해는 제대로 보상하는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불이익 두려움, 의구심 걷어줘야

제보나 진술을 망설이게 하는 두 원인은 나와 가족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라는 두려움과 과연 후속 수사나 조치가 제대로 이뤄질 것이냐는 의구심이다. 현재 내부제보자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부패방지법(공직자 대상)과 공익신고자보호법(민간 포함) 정도다. 하지만 두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선 신고 시 인적사항과 신고 취지를 실명으로 작성해야 하고 직접 부패행위 증거도 제출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불가피하게 국민권익위원회 등 관공서가 아닌 언론, 시민단체, 노조 등을 통해 먼저 알렸을 때는 보호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부 기관의 부패를 신고할 때도 반드시 국무총리실 산하 기관인 권익위 등을 거치도록 규정한 것이다.

또 제보자가 인사 불이익 등을 당할 때 권익위가 소속 기관장에게 적절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지만, 해당 기관이 이를 따르지 않고 제보자에 대해 행정소송 제기 등을 이어가면 당할 도리가 없다. 권익위 조치 요구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의 부패방지법상 벌칙규정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 1,000만원 이하로, 이 법이 규정한 다른 처벌조항들(업무상 비밀 이용죄 7년 이하 징역 등)보다 턱 없이 미약하다.

1992년 중위 복무 중 군 내 부정선거를 폭로했던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본부장은 “해외에서도 허위신고, 무고 등을 우려해 익명신고는 꺼리지만 변호사나 시민단체를 통한 위임 및 대리신고, 언론제보 등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아무리 금지해도 내부신고자를 색출하고 마는 현실을 감안하면 사후 보호, 재취업 알선, 보상금 지급 등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익위에 따르면 2008~2015년 신고자나 협조자가 보호 조치를 요구한 것은 총 160건으로 이중 125건이 신분보장 요구였다. 실제 신분보장이 된 것은 34건(27%)에 불과했다.

신변안전이 우려되는 경우도 있으나 최근 있었던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청문회 증인들은 법적으로 신변보호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정부는 범죄피해자보호법, 특정범죄신고자보호법(이하 특신법)을 근거로 범죄피해자나 증인의 신변을 보호하는데, 특신법은 강력범죄나 범죄단체, 즉 조폭을 신고한 이를 대상으로 한다. 권익위 등이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할 수는 있다. 그러면 경찰 각 관할서 및 지방청은 심사위원회를 열어 위험도를 체크하고 순찰강화, 위치추적 장치 제공, 밀착경호, 보호시설 위탁, 임시숙소 제공 등을 필요한 조치를 결정한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이 특신법 등에 의해 수행한 신변보호는 4,000여건에 달하지만 전담인력이나 예산이 별도로 배정되지는 않고 있다.

신고 후 조치 및 수사가 제대로 이어지는지 여부도 관건이다. 시민자치감사포럼 이사장 송병춘 변호사는 “고발 후에도 신속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감사원, 권익위, 검찰 등이 권력의 눈치를 보며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제보자뿐”이라고 꼬집었다. 사정기관이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해야 제보를 활성화하고 제보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제보 시스템과 감찰 기구만 정상 작동해도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사태는 재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진실한 증인이 출세하는 사회

신고자가 경제적 보상을 바라는 경우는 드물지만, 결국 이들이 경제적 곤란을 겪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상금에 대한 논의도 절실하다. 현 규정으론 내부제보로 공공기관 수입이 회복ㆍ증대되는 등의 경우에만 보상금을 신청할 수 있다. 해고로 인한 막대한 피해는 호소할 방법도 막막하다. 이 본부장은 “확장된 보상을 할 수 있도록 별도 재단 또는 기금을 마련해 지속적 지원, 취업알선, 생활금 및 자녀 장학금, 상담 및 치료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내부고발자로서 스스로 오래 고통을 받았던 이 본부장은 ‘고발은 짧고 고통은 길었다’는 경험칙의 전복, 즉 박수와 환대를 받는 제보자의 역사를 쌓는 것을 궁극적 지향점으로 제시한다. 제보자의 고통 받는 모습만 기억되는 현실을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혈액 부실관리 실태를 내부고발한 적십자사 직원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에이즈, 간염, 말라리아 혈액을 수혈 받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어야 했을 겁니다. 불량 소화기 제작을 제보한 직원이 아니었다면, 어느 병원이나 학교에서 사고가 터졌을지 알 수 없습니다. 급식비리 고발자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내 아이가 먹고 마시는 식품의 안전도 지킬 수 없을 겁니다. 여기 도둑이 있다고 호루라기를 분 이런 선량한 이들을 낙오자로 모는 일, 이제는 끝내야 하지 않을까요.”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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