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 요르단 국왕이 결정적 역할
트럼프 접견 계획 못 잡았다가
틸러슨 등 주선으로 만나 설득
“새 정착촌·대사관 이전 너무 위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경 친(親)이스라엘 일변도 외교 대신 종전보다 유화적인 중동 외교 모델로 선회하고 있다. 워싱턴을 방문한 압둘라 요르단 국왕을 비롯해 여러 아랍 국가 수장들이 트럼프를 비롯한 백악관 실세들의 마음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 이스라엘의 신규 정착촌 건설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 후 백악관의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고 보도했다. 대선 기간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하는 등 현상 파괴적 외교를 공언한 트럼프가 이제는 사우디아라비아ㆍ이집트ㆍ아랍에미리트(UAE) 등 전통적인 이슬람권 동맹국과의 공조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이스라엘 언론과 인터뷰에서 “정착촌 확대는 평화에 도움되지 않는다”, “대사관 이전은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직접 언급하는 등 기류가 확연히 바뀌었다. 여기에는 워싱턴을 방문한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압둘라 국왕은 당초 트럼프를 만날 계획조차 잡지 못한 채 워싱턴에 왔으나, 2일 조찬기도회에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ㆍ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등의 주선으로 트럼프와 만나 이스라엘의 새 정착촌 건설과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선언 등이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경고를 전달했다.
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아랍 동맹 역할론’에 흥미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살만 사우디 국왕,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UAE 아부다비 왕세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이슬람권 동맹국의 입장을 청취하고 중동정책을 가다듬었다. 트럼프가 중동정책을 맡긴 최측근 쿠슈너는 이-팔 양자합의를 중심으로 중동 분쟁을 해소한다는 ‘인사이드 아웃’대신 수니 이슬람 국가와 이스라엘의 관계 개선을 지렛대로 이-팔 분쟁을 해결한다는 ‘아웃사이드 인’ 모델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의 전략 전환이 이스라엘에 나쁜 소식만은 아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대외적으로는 정착촌 확장을 지지하는 강경 외교를 구사하고 있지만, 안으로는 정국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급격한 질서변화는 추구하지 않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 스스로가 ‘아웃사이드 인’ 해법을 선호해 사우디ㆍ이집트 등 수니파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다.
미국과 가까운 아랍 국가들 역시 전처럼 이스라엘을 경계하지 않는다. 러시아와 손잡고 동쪽에서 세력을 확대하는 시아파 맹주 이란을 견제하는 데에 이스라엘과 미국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ㆍ이란과 이해관계가 엇갈린 터키는 지난해부터 이스라엘과 국교정상화에 돌입했다. 수니파 맹주 사우디는 공식적으로는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는 것을 거부하고 있지만 이스라엘과 비공식으로 접촉했다는 보도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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